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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r 21. 2022

<스펜서> 꾸며낸 이야기 그러나 비극은 실재한

처연함, 고독, 아름다움 그리고 다이애나

예술가 니키리는 자신의 SNS에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 말했다. 비극적인 다이애나의 삶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라며 표현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이 영화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던 것일까. 편집증적으로까지 묘사된 다이애나의 불안전하고 복잡한 심경을 적절한 허구를 섞어 그려낸 영화 <스펜서>는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안착했다. 유명한 예술가에게 그리고 그녀의 삶을 정보로만 통해 얻은 접점이 없는 먼 나라의 이들까지도.


<스펜서>는 1990년대 초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이애나가 왕실별장에서 머문 3일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시작에 앞서 위 영화는 실제 비극을 토대로 꾸며낸 이야기라 서두에 밝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개인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인물의 감정과 특정 상황을 집중적으로 그려내기에 굳이 말하자면 허구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의 서두에 밝힌 실제 비극이란 불행한 결혼생활을 구태여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다이애나라는 한 여성이 겪었던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다이애나는 비극적인 결혼생활을 자신의 의지대로 쉽게 청산할 수 없었다. 애초에 왕실과 집안의 압박으로 이루어진 사랑 없는 결혼과, 남편의 지속적인 불륜은 그녀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시종 그녀를 쫒는 파파라치들과 자주적인 그녀의 성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왕실의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점차 시들어갔다. 실제 다이애나는 그토록 원하던 자유를 되찾은 지 1년 만에 파파라치들에 의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영화 <스펜서>는 이러한 그녀의 비극적인 삶을 모두 조망하지 않은 채 크리스마스라는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조차 행복할 수 없던 다이애나의 3일을 그린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조차 그녀는 왕실의 일원으로서 가족모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섭식장애를 일으킨다. 남편은 변기를 붙잡고 토를 쏟아내는 그녀를 걱정하기는커녕, 그녀가 좀 더 품의 있게 행동할 것을 바란다. 핸리 8세에 의해 누명을 쓰고 참수형을 당한 앤 불린에 대한 책을 읽으며 그녀는 점차 자신을 앤에 동화시킨다. 그녀는 앤 불린의 후손이자 자신의 가문인 스펜서를 잊지 않기 위해 그렇게 부단히 노력한다.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는 시퀀스에서 그린 그녀의 자유로운 몸짓과 춤은 마치 날개를 잃은 새의 부질없고도 처연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자유와 비상을 끊임없이 갈망하다 이내 날개를 버리며 걷기를 택한다. 그렇게 그녀는 남편이 불륜녀에게 똑같이 건넨 목걸이를 끊어버린다.


영화의 결말을 치닫을수록 영화는 그녀에게 소정의 자유를 선사하며, 희망적으로 끝난다. 그녀의 실제 삶이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현실의 기록을 치유하듯이 영화에서 그녀는 잠시나마 자유로와 보인다. 영화의 서문에서 실화가 아닌 '실제 비극'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녀의 삶이 비극이었음을 한번 더 되짚는 동시에 그녀의 고통을 예술적으로 그리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한 문장일 것이다. 꾸며낸 이야기일지어도 비극은 실재했다. 처연함과 고독 그리고 외로움과 아름다움을 모두 지닌 다이애나는 영화에서나마 그녀가 끝끝내 놓지 않으려던 자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왕실에 들어오기 전, 그저 그녀가 그녀였을 때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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