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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22. 2022

소설적 자유를 침해당한 팬들과 신이 된 조앤 K. 롤링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을 보고

지금도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리포터의 불의 잔을 손에 놓지 못하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 불현듯 등장한 해리포터는 그렇게 나의 학창 시절 중 일부가 되었고, 네이버 해리포터 팬카페를 만들 만큼 나의 열성 또한 대단했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해리포터가 막을 오르고 그 뒤를 이어 <신비한 동물들> 시리즈가 연이어 개봉했다. 그저 나는 해리포터의 명성에 그만 숟가락을 얹으라 말하고 싶다.

머글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린델왈드의 세력은 날로만 커져가는 가운데, 덤블도어는 그를 저지하기 위한 팀을 꾸리기에 이른다. 이에 뉴트와 제이콥, 힉스교수, 뉴트의 형 테세우스, 프랑스 마법부 소속 유서프 카마, 뉴트의 조수 번티는 그린델왈드를 막을 위험한 여정에 함께 오른다.


<신비한 동물사전>시리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약 50년 전 이야기를 다룬, 그러니까 덤블도어와 맥고나걸 교수가 젊었을 시절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동사 시리즈는 그럭저럭 괜찮은 스타트를 끊었던 1편에 비하여 이후 개봉작들은 팬들과 평단에 혹평을 받고 있는데, 애초에 해리포터에 관하여 꽤나 애정이 깊은 나로서는 2편인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까지만 해도 꽤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야기 전면에 등장한 그린델왈드가 꽤 무섭게 그려지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한국인배우가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국중심의 해리포터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발을 들인 것 같은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극 중 내기니를 연기하는 수현과 크레덴스를 연기한 에즈라 밀러의 케미가 꽤 좋아서 두 배우의 인터뷰 영상을 몇 번이고 찾아보고 했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를 작품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 후로 고대하고 고대하던 3편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개봉하였다. 영화는 나의 예상보다 미적지근하였고, 관객이 어떠한 심미안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해리포터의 명성에 기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어떻게 이토록 무미건조할 수 없는 조건들을 두고 영화의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지 신기하여 영화정보를 다시 찾아보았다. 역시나 각본에 뚜렷이 박힌 원작자의 이름이 보이자 나는 이제 그녀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뒤에서 관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확신했다.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속 비밀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그린델왈드와의 관계였고 나머지 하나는 크리덴스와의 문제였다. 조니 뎁에서 매즈 미켈슨으로 배우가 교체된 것이 오히려 반가울 정도로 주드 로와의 케미스트리는 돋보였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 될 줄은 몰랐다. 중간에 등장한 뉴트의 개그씬이 옅은 미소를 띠게 해 주었지만, 그 후 영화는 '기-승-전-결'의 구조가 모호한 채로 결말을 맞이해버린다. 그린델왈드가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은 꽤 길게 보여주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사악함 내지는 극의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린델왈드가 이내 몰락하는 시퀀스는 너무도 싱거워 '눈 떠보니 결말'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신동사 시리즈는 4편의 제작이 불투명해질 것이 자명해 보였다.


문학에서는 '소설적 자유'라는 것이 등장한다. 소설적 자유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므로, 창조주인 작가라 할지라도 무분별하게 작품 속 세계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소설적자유': 네이버 국어사전 (naver.com)) 조앤 K. 롤링은 그렇게 해리포터 팬들에게서 해리포터의 세계가 자신이 창조하였음을 신동사 시리즈를 통하여 다시금 증명해보였다. 과연 그 증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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