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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09. 2022

샘 레이미가 만들어낸 아름답게 기괴하고 고어한 마블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고

아이언맨의 죽음 이후로 MCU는 '멀티버스'라는 새로운 장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최근 개봉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디즈니플러스에서 스트리밍 된 <완다비전>에서 스칼렛위치의 존재감을 시작으로 <로키>에서 멀티버스란 배경을 공고히 쌓아 올린 뒤 <스파이더 맨: 노웨이 홈>이라는 작품으로 서문을 열어 개봉된 작품이다. 앞선 <이터널스>에서 감독의 역량과 MCU라는 세계가 적절히 융합되지 못한 것을 만회라도 하듯이, 원제가 주는 '광기의 멀티버스'라는 제목에 걸맞게 샘 레이미라는 감독의 광기가 십분 돋보이는 마블 최초 호러영화로써.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파이더 맨의 부탁으로 무너진 시공간의 차원을 간신히 돌이킨 뒤 줄곧 또 다른 자신이 등장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자신의 옛 예인 크리스틴 팔머의 결혼식에 참석한 날 문어 형상의 거대한 괴생물체가 도심을 활보하는 것을 목격하고, 괴물에게 쫓기는 소녀를 윙과 함께 구해낸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윙은 그 소녀에게서 멀티버스와 소녀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그 소녀와 이 세계를 위험에서 구해내고자 완다를 찾아간다. 그녀가 웨스트 뷰에 있었던 사건을 겪은 이후로 스칼렛 위치로 변해버린 것을 모른 채.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제임스 건의 작품 이후로 감독의 연출력과 특징이 히어로 영화에 적절히 녹아낸 또 다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앞서 MCU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통하여 제임스 건이라는 감독의 색채를 잘 녹여내었으나, <이터널스>를 연출한 클로이 자오 감독과는 제대로 된 융합되지 못한 채 평론과 관객들에게 혹평을 받은 바 있다. 물론 마블 영화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클로이 자오의 <이터널스>가 마블식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겠으나, 예술영화를 주로 촬영하는 감독이 거대한 자본을 얹은 히어로 영화를 연출하는 데에는 분명히 어떠한 한계가 존재했다. 이때의 실패를 MCU는 샘 레이미를 통하여 다시금 만회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마블 최초 호러영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샘 레이미라는 감독의 연출력과 특징이 십분 잘 활용되어 적절한 기괴함을 뽐낸다. 샘 레이미 감독의 기존 연출작인 <이블데드>와 <드래그 미 투헬>을 본 이들이라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고어한 장면과 생각보다 수위 높은 사살 장면들에 그의 전작들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샘 레이미 감독이 또 다른 히어로 영화를 성공시키지 못할 것이란 기우는 없었을 테지만, 사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는 <드래그 미 투 헬>에서 보았던 B급 호러영화의 감성과 닮았다. 히어로영화 인양 내세우고 있지만 기존에 보았던 마블 영화들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기괴하고 고어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고전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의 전환숏들과 특수효과 그리고, B급 호러를 연상시키는 음표 시퀀스까지 MCU를 모르는 관객들일지라도 기존에 보아온 MCU영화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로 감독의 장르가 꽤 많이 녹아있다. 이 점이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바라보는 호불호의 중요한 지점이 될 수도 있겠으나, 마블이 작품의 예술성과 독창성까지 넘보려 한다는 점에서 마블 팬인 나로서는 그저 반갑기만 하다. 


다만 날로 높아지는 마블 영화의 진입장벽이 한편으로는 염려스럽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히어로 무비에서 덕후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장르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마블 영화들을 누군가에게 새롭게 추천하기가 주저스럽기 때문이다. 드라마라는 또 다른 장르로 세계를 확장시킨 것은 MCU의 오래된 팬으로서 그만큼 볼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이니 반갑기는 하나, 점차 우리만의 예술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우가 따라온다. 어쩌면 이는 하나의 세계관을 공고히 쌓아 올리는 모든 시리즈들이 갖고 있는 애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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