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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24. 2022

사랑을 이룬 주연처럼, 사랑을 찾은 조연처럼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보고

연애에 있어서는 서로 멍청이라 주장하는 친구 A와 함께, 이것만큼은 꼭 우리가 함께 봐야 한다며 고른 영화가 있었다. 제목부터 심금을 울리는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그렇게 우리는 따사로운 한낮의 주말에 보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관계에서 쉽게 헤어짐을 고하지 않는 이들은 때때로 그렇게 미련하게 먼저 이별을 맞는다. 우리는 대체로 이별을 듣는 편이었고, 내가 이별을 고할 때에는 상대방의 행동이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금사빠인데도 불구하고 금사식이 되지 않는 정 많은 사람들이 갖는 고충은 언제나 그렇게 외로움을 남겼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단번에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름 이열치열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잡지사의 기자로 일하고 있는 앤디는 언제나 마음속에 진정한 언론인을 꿈꾸지만, 현실은 패션잡지사에서 오로지 팔리기 위한 글을 쓰는 처지이다. 편집장을 위한 글쓰기를 잘 수행하다 보면, 다음엔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으리란 희망을 안고서 그녀는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이라는 주제로 칼럼을 기획한다. 한 편 광고사에서 재직 중인 벤자민은 다이아몬드회사인 광고주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10일 안에 지목당한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둘의 상황을 일전에 알고 있던 벤자민의 경쟁자는 그에게 일부로 앤디를 꼬시라 말하고, 반면에 앤디는 칼럼을 위 벤자민에게 10일 안에 차여야 만한다. 그렇게 둘은 비밀을 안고 각자가 도래한 10일을 위하여 데이트에 임한다.


작년에 개봉한 손석구, 전종서 주연작 <연애 빠진 로맨스>는 앤디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연애담을 주제로 기사를 써야만 하는 우리가 등장한다. 앞선 영화를 재밌게 본 나로서는 2003년에 개봉한 위 영화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을 보자마자, <연애 빠진 로맨스>의 시작은 바로 이 영화였음을 알았다. 10일 안에 기필코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남자와, 반드시 그 안에 차여야만 하는 여자의 데이트는 그 상황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달콤한 웃음을 남긴다. 케이트 허드슨의 진상 연기는 상황만 보면 분명 뒷골이 당기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허세에 가득 찬 남자 벤자민을 연기한 매튜 맥커너히는 그가 인터스텔라의 바로 그 아빠라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사랑스러운 진상녀와 그녀에게 쩔쩔매는 남자라는 구도는 우리에겐 2001년에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에서 익히 보아온 관계성이지만, 그 쩔쩔매는 남자가 바람둥이라는 설정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진심을 연 바람둥이라니. 이토록 말도 안 되지만 그토록 달콤한 상황이라니.

마침내 각자가 가진 비밀을 알게 된 둘은 서로에게 위선자라며 등을 돌리지만, 결국 앤디가 쓴 진심 어린 기사로 벤자민은 진정한 언론인이 되기 위하여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는다. 자신의 진상스러운 행동을 사랑스럽게 봤던 한 남자를 잃은 여자와,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자신을 결국 헤집어놓은 여자를 잃었던 남자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 느낀 호감처럼, 진짜 사랑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앤디에게 기삿거리를 제공한 그녀의 친구 미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말이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곤 했던 그녀 앞에 그녀의 진심이 소중한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는 전 남친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말도 안 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매력적인 외모의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닌, 평범한 조연에 불과한 미셀 앞에 뒤늦게 전 남자친구가 찾아온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때때로 로망을 꿈꾼다. 마침내 사랑을 이룬 주연처럼, 기어코 자신을 알아본 사랑을 찾은 조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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