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유형의 시나리오는 바로 이러할 것이다. 어떤 커플이 우연치않게 살인 또는 강도를 저지르고, 그들은 분명 도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행복해 보인다. 끝내 수많은 경찰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떠한 선택지도 없을 때 그 들은 함께 자살을 택한다. 이 지난하고도 새롭지 않은 시나리오는 그러니까, 그 들이 왜 그런 선택들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시간상 미처 생략된 명작에서의 경쾌한 시퀀스인 것이다.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는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며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 중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델마는 한 남자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고 이를 목격한 루이스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한순간에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어 도주하게 된 델마와 루이스. 그러나 도주 중 우연히 만난 제이디라는 남성에게 마음을 뺏긴 델마는 결국 그와 하룻밤을 보내다 그 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도주 자금을 모두 도둑맞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강도를 저지르고만 델마. 그리고 살인 용의자와 목격자에 신분에서 살인 용의자와 강도가 되어버린 둘. 경찰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포위하고 그 들은 결국 도망이 아닌 탈출을 택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뮤직비디오에서 흔히 차용하는 소재의 원작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그 들은 결코 마약에 취하지도, 사회 부적응자도 아닌 '약자'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델마는 지독히도 보수적인 남편에게 억눌러 살며 친구와의 여행도 마음껏 떠날 수 없을 만큼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 루이스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그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 루이스가 델마를 구하기 위해 강간범을 살해한 것과 델마가 제이디에게 속아 돈을 모두 빼앗겨 강도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들이 자발적으로 행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러니까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가버린 것이다.
그 사실은 극 중 형사 다릴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감독 역시 그들을 그와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음을 관객에게 시종 상기시킨다. 분명 델마와 루이스는 살인범과 강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릴은 끊임없이 그 들을 설득시키며, 그 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심지어 그는 그 들의 돈을 훔친 제이디에게 외친다. 네가 행해버린 좀도둑 짓이 누군가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고. 사람을 쉽게 믿고 사랑에 쉽게 속는 델마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그 상처로 인해 기어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린 루이스. 세상에 상처 입은 약자들은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흥미로운 점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그들은 경찰들의 법망을 피하여 도주하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자유로워 보이며 때로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그녀들 안에 억눌려있던 무언가를 풀어헤치듯, 델마는 강도가 천직인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고 종종 마주하는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그들은 감탄하고 만다. 마치 생애 마지막 여유처럼, 지금 떠나는 길이 끝이 아닌 시작인 것처럼. 권태롭고 시궁창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그들을 통해 관객은 조그만 해방감을 느낀다. 생애 한 번 자신을 마음껏 풀어헤친 후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과감히 도전하는 일. 도주가 아닌 여행을, 도망이 아닌 탈출을 택한 그 들의 추락이 마치 비행과도 같이 묘사된 이유 역시 그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한번 즈음 일탈이 아닌 탈출을 꿈꾸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