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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26. 2022

<델마와 루이스> 도망이 아닌 탈출, 추락이 아닌 비행

뮤직비디오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유형의 시나리오는 바로 이러할 것이다어떤 커플이 우연치않게 살인 또는 강도를 저지르고그들은 분명 도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행복해 보인다끝내 수많은 경찰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떠한 선택지도 없을 때 그 들은 함께 자살을 택한다이 지난하고도 새롭지 않은 시나리오는 그러니까그 들이 왜 그런 선택들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시간상 미처 생략된 명작에서의 경쾌한 시퀀스인 것이다


보수적인 남편을 둔 가정주부 델마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는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며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 중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델마는 한 남자에게 강간당할 위기에 처하고 이를 목격한 루이스는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한순간에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어 도주하게 된 델마와 루이스. 그러나 도주 중 우연히 만난 제이디라는 남성에게 마음을 뺏긴 델마는 결국 그와 하룻밤을 보내다 그 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도주 자금을 모두 도둑맞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강도를 저지르고만 델마. 그리고 살인 용의자와 목격자에 신분에서 살인 용의자와 강도가 되어버린 둘. 경찰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포위하고 그 들은 결국 도망이 아닌 탈출을 택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뮤직비디오에서 흔히 차용하는 소재의 원작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그 들은 결코 마약에 취하지도, 사회 부적응자도 아닌 '약자'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델마는 지독히도 보수적인 남편에게 억눌러 살며 친구와의 여행도 마음껏 떠날 수 없을 만큼 통제된 삶을 살고 있다. 루이스는 성폭력 피해자로서 그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 루이스가 델마를 구하기 위해 강간범을 살해한 것과 델마가 제이디에게 속아 돈을 모두 빼앗겨 강도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 들이 자발적으로 행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러니까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몰고 가버린 것이다.


그 사실은 극 중 형사 다릴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감독 역시 그들을 그와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음을 관객에게 시종 상기시킨다. 분명 델마와 루이스는 살인범과 강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릴은 끊임없이 그 들을 설득시키며, 그 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심지어 그는 그 들의 돈을 훔친 제이디에게 외친다. 네가 행해버린 좀도둑 짓이 누군가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고. 사람을 쉽게 믿고 사랑에 쉽게 속는 델마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그 상처로 인해 기어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린 루이스. 세상에 상처 입은 약자들은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흥미로운 점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분명 그들은 경찰들의 법망을 피하여 도주하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자유로워 보이며 때로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그녀들 안에 억눌려있던 무언가를 풀어헤치듯, 델마는 강도가 천직인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고 종종 마주하는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그들은 감탄하고 만다. 마치 생애 마지막 여유처럼, 지금 떠나는 길이 끝이 아닌 시작인 것처럼. 권태롭고 시궁창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그들을 통해 관객은 조그만 해방감을 느낀다. 생애 한 번 자신을 마음껏 풀어헤친 후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과감히 도전하는 일. 도주가 아닌 여행을, 도망이 아닌 탈출을 택한 그 들의 추락이 마치 비행과도 같이 묘사된 이유 역시 그것은 아닐까. 우리는 종종 한번 즈음 일탈이 아닌 탈출을 꿈꾸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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