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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08. 2019

<스틸 미> 당신으로 시작하여 나로 끝나는 이야기

윌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에 관하여

대담하게 살아, 클라크


영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카페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루이자는 촉망 높은 젊은 사업가였지만 한순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자 윌의 간병을 맡게 된다. 괴상한 패션 감각을 지녔지만 그 누구보다 인정 많고 따뜻루이자 인해 윌의 일상에도 활기를 띠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선 어느덧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루이자는 충분히 본인 스스로도 빛나고 밝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불미스러운 일(졸업파티에서의 성추행 또는 성폭행으로 보이는)로 인하여 지극히 안주하는 삶을 살았고 윌은 그런 그녀가 이 작은 동네를 벗어나서 대담하게 살았기를 바랐다. 윌은 사고를 당하기 전, 여행하고 모험하는 것을 즐겼던 자신의 삶을 사랑했고 마비가 되어버린 그의 몸은 더 이상 그에게 어떠한 행복도 안겨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안락사를 통하여 루이자와 영원히 이별했고 루이자는 그가 남겨준 작은 유산으로 그가 그녀에게 바라던 삶을 살아보고자 다짐한다.


루이자는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돌아와 런던에 정착했지만, 윌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윌의 죽음에 동조했다는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루 종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떠나는 공항에서 일자리를 얻은 그녀는 그저 좁은 바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윌을 그리워하다 옥상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게 되고 그 사고를 통해 루이자는 구급 대원 샘을 만나게 된다. 그 역시 누나를 암으로 잃은 슬픔이 있었고,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는 공통점과 서로를 향한 끌림으로 루이자에게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려던 와중 윌의 딸인 릴리가 나타난다. 릴리는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고 세상을 떠나버린 아빠와 자신보다는 사랑이 우선인듯한 엄마 사이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방황하는 10대 소녀였고, 루이자는 윌의 딸인 릴리와 함께하며 윌이 남긴 상처를 점차 회복하고 그가 진정 원하던 '대담한 삶'을 살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영화 <미 비포 유> 스틸컷

여기까지가 독자들이 기억하는 루이자일 것이다. 윌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그를 잃은 후 슬픔에 잠긴 루이자를 통하여 남겨진 사람의 아픔과 그리움을 극복하던 과정들. 전작 <미 비포 유>에서 좁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던 루이자가 윌을 통하여 세상에 한 발자국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애프터 유>는 윌 없이도 그가 남겨진 현실에서 아픔을 딛고 꿋꿋이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으며 최신작 <스틸 미>는 그런 루이자가 결국 윌과 샘 없이도 혼자서 낯선 땅에 떨어져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대담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며, 안주하지 않는' 삶을 이루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니까 소설 <스틸 미>는 <미 비포 유>의 완결판임과 동시에 전작들은 <스틸 미>가 나오기까지의 초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스틸 미>는 윌의 간병인이었던 네이션이 새로 맡은 뉴욕의 유명한 사업가 고프닉 부부 집에 고용된 루이자가 미국행 비행기에서 이제 막 착륙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스틸 미>는 나처럼 외국에서 일자리를 구해본 사람이라면 한번 즈음 공감할법한 내용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차이점이라면 그녀는 뉴욕의 '부자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고프닉 집에서 머물며 상류층의 생활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루이자의 고용주인 고프닉 부부를 포함한 상류층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들을 통하여 이민자의 쓸쓸함과 이민국의 차가움, 그리고 그 안에서 온정을 나누는 주변인들과 함께 더 이상 이 낯선 도시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은 못 보곤 한다' 한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직장에서 해고된 루이자가 집도 절도 없는 신세에서 만나게 된 옆집 노부인 '마곳'으로 인하여 그들은 서로 차갑고 낯선 도시에서 온기를 나눈다. 루이자로 인하여 마곳은 인생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던 그 순간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고, 루이자 역시 그녀로 인하여 더 이상은 낯설지 않은 이 도시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실행에 옮긴다. 비록 그녀에게 있어 뉴욕이란 곳은 남자친구 샘과의 애정전선에서 문제를 만들고 한 번 더 실패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차마 쉽게 떠나지도 못하는 그런 도시였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끈다. 마치 소설 표지에 적힌 문구처럼, 그녀는 불가능할 것 없는 뉴욕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경험하고 진짜 그녀 자신을 찾은 것이다.


어쩌면 영화화까지 되며 화제를 불러 일을 켰던 <미 비포 유>는 <스틸 미>를 위해 존재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들이 느끼는 쓸쓸함과 고독함이 공감되었지만 작품 전체적으로는 결국 이 모든 이야기가 폐쇄적이었던 한 개인이 자신을 되찾는 기나긴 여정인 것이다. 윌 트레이너는 루이자에게 사랑하는 옛 애인이자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찾게끔 인도한 이었으며, 샘은 괴상한 패션을 사랑하는 루이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녀가 어떤 꿈을 꾸든지 간에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표지에서까지 등장하는 루이자의 꿀벌 스타킹은 소극적인 삶을 살기 이전의 본래의 그녀를 상징하는 물건임과 동시에 윌 트레이너가 그녀에게 남기고 간 최고의 유산이자, 샘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녀가 왜 조쉬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길고 길었던 루이자의 이야기를 끝으로 <스틸 미>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로맨스로 시작하여 철학으로 끝내는 조조 모예스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더불어 번역본이라고 하기에는 문장을 막힘없이 술술 읽게 만든 공경희 번역가에게도. 크고 작은 사건들을 끝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시작한 루이자가 앞으로 어떠한 삶의 굴곡이 있을지라도 그녀가 가진 사랑스럽고도 괴상한 매력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나 역시 때때로 삶의 굴곡이 있을지라도 진짜 나다움을 잃지 말 것. 그것이 윌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크고도 소중한 유산이므로.


나는 딱히 갈 곳도, 꼭 가야 할 곳도 없이 걸었다.
샐러드 바에서 샐러드를 주문하면서, 먹어본 적이 없는 고수잎과 검은콩을 추가했다.
지하철을 탈 때는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고 표 사는 법과 악명 높은 미치광이를 알아보는 법을 파악하려 했다.그리고 밝은 햇빛 속으로 나오면 10분이 지나서야 심박 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윌처럼 브루클린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는데,
아래 물을 보니 가슴이 뛰고, 차량이 지나는 흔들림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다시 윌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담하게 살아, 클라크.'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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