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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28. 2020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직장인처럼 사는 소설가에 대해

한때나마 작가지망생이었던 직장인이 읽으며

한때나마 소설가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넣어보았던 대학공모전에서 각각의 단편소설로 연세대와 명지대를 1차씩 붙자 나는 어쩌면 소설에 재능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보기 좋게 2차에서 예고생들에게 밀린 뒤, 어쩌면 소설 역시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뒷받침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자  곧장 진로를 틀어 도서관 사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드라마극본을 공부했을 때에도 줄곧 소설을 써오던 친구에게 나는 에세이만 써봤어라는 말로 소설은 써보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며, 소설가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인 양 살았다. 어느덧 나에게 소설가라는 것은 '어린 시절 꿈이 대통령이었어요'라는 말처럼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당시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원로작가가 풀어내는 소설가의 이야기라는 것   때문이었다. 누군가 도서관 사서가 그 유명한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단 말이야?라고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출간되자마자 서점에서 구입했던 이유는 그가 보통의 작가와는 다르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상상하는 사회성 없는 작가로서의 히키코모리스러운 이미지와 대조적이게도 그는 충실히 소설가라는 직업을 '직업인'으로서 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듯 일어나 글을 쓰고 퇴근하듯 글을 마감하며,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꾸준히 달리기를 하며 늘 정해진 분량만큼의 글을 소화해내는 직장인 같은 소설가. 그의 입을 통해서 듣는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는, 1년간 드라마작가 극본을 배운 나에게 또 다른 활력을 심어줄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워킹홀리데이행에 정신이 팔려 그의 책을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지만.


해볼 것 다 해본 후 뒤이어 자리를 잡은 지금에서 그의 책을 다시 집은 것은, 20대 중반에 갖고 있던 어떤 열정이 사그라든 후 똑같은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는 것이 무서워진 이유에서였다. 앞으로 30년 동안은 유지할 이 직업에 대하여 스스로 자그만 채찍질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작가지망생으로서 책을 구입 후 직업인으로서 권태로움이 느껴질 즈음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을 작가지망생이었던 그 시절의 내가 읽었다면 과연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철저히 직업인으로서 소설가에 대해 말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 또한 잠시 잊고 지냈던 소설가에 대한 열망을 다시 피웠을까. 책의 한 챕터를 읽어나갈 때마다 도리어 지금 이 책을 읽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사실 소설가를 열망하는 한 사람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도, 모든 직업인들에게 바치는 공감과도 같다. 소설가로서의 그는 고귀한 예술가 중 하나라기보다는, 정년퇴임을 앞둔 오래된 직장인의 느낌이 강하다. 어쩌면 그의 글이 이토록 현실적이기에, 소설가를 꿈꾸는 작가지망생들이 좌절하지 않고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노라 추천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라는 직업이 고귀한 천재성을 뛰어야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여타 다른 직장인들처럼 하루 정해진 분량의 일을 하고, 일상에 지치지 않기 위해 체력을 기르는 정도의 꾸준함과 노력이 있다면 시도해볼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는 누누이 말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그것은 비단 그가 말하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아닌, 모든 직업에게 해당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이토록 덤덤한 자세로 자신의 오래된 직업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때 나 역시 소설가를 꿈꾸었던 지망생으로서, 오늘도 출근을 앞둔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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