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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n 08. 2020

<일의 기쁨과 슬픔>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때때로 우울하며 사소하게 행복한 하루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시간은 흘러 어느새 자정을 넘긴다. 다음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서둘러 출근할 채비를 마친다. 몰린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하고 나면, 이내 퇴근시간에 가까워진다. 물이 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을 버스에 싣고 몸만큼 무거워진 머리를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고 떠보니 어느새 집이다. 적막한 집 안에 홀로 들어와 그대로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눈을 감고 오늘 있었던 하루 일과에서 벗어나고자 애쓴다. 습관처럼 핸드폰으로 시답지 않은 뉴스거리들을 검색해본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린 나이에 직장인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20대 중반이라는 적은 나이와 직장인 3년 차라는 연차는 소위 일 권태기라 불리는 '일태기'에 접어들기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직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왜 그리도 높은지, 무거운 출근길을 더욱 무겁게만 만들 뿐이었다. 당시에는 일태기가 지나면, 이 지난한 시기도 지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도피성 백수를 자처하며 하고 싶은 공부도 해보고, 지긋지긋한 고향을 벗어나 서울에서 일도 해본 뒤 먼 나라에서 1년간 살고 돌아왔다. 돌아돌아 다시 이 직장을 선택할 줄도 모르고.


장류진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제목은 알랭 드 보통의 동명의 에세이에서 따왔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한 권의 소설집은 현대인이라면 한번 즈음은 겪어볼법한 직장인 사춘기들을 다양한 주인공들을 내세워 그렸다. 첫 직장 이후 7년간 자리 잡지 못하며 사소한 방황과 대범한 일탈을 감행했던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을 포함하여 여전히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 중인 사람, 이 길이라 생각하고 믿고 걸어왔지만 걸어오다 보니 어느새 내 길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까지. 창의적으로 자라라며 끊임없이 교육받았지만 한 살 한 살을 먹어갈수록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를 실감하고 마는 어른 아이들의 다양한 사례집 같달까. 어릴 적에 나는 어떤 특별한 슈퍼맨과도 같은 사람이라 어쩌면 죽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던 8살 아이가 서른을 목전에 앞두고 적은 월급을 쪼개며 암보험에 가입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의 기쁨과 슬픔> 속 세상은 그저 처연하지만은 않다. 여행 중 경유지에서 만난 눈이 보이지 않는 한 노신사가 찍어준 필름 사진을 고이 간직해오다, 일상에 지쳐 뒤늦게 사진 속 주소를 발견하고는 몇 년이 지나 답장을 보내던 주인공처럼. 어쩌면 노신사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결말이 나왔더라면 나는 이 소설책을 좀 더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무미건조하며 때때로 우울한 나의 일상에서 작가 당신마저 그러기냐고. 그렇지만 주인공은 무사히 노신사와 연락이 닿아 답장을 좀 더 일찍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결말을 맞았다. 어쩌면 줄곧 냉소적이고 차갑기까지 한 다른 이야기들에 비하여 위 소설이 책 마지막 즈음에 실린 이유 역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연이었음을 실감하는 인생일지어도, 소소한 설렘과 행복이 때때로 찾아오는 그런  평범한 인생이 보통의 인생이라는 것을. 일의 슬픔에도 기쁨은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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