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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28. 2020

<살고 싶다는 농담> 조금은 다정해진 그와 나

허지웅작가의 신작을 읽고

몇 해 전, 허지웅 작가의 <나의 친애하는 적>을 읽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당시 그의 책을 읽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었는데 첫 번째로는 그의 본업이 작가라는 사실을 실감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나의 염세적인 시각이 그와 꽤나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허지웅이라는 방송용 캐릭터의 이미지에 나도 모르게 그의 본업이 작가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책을 처음 리뷰할 때 몇 번이고 언급했던 내용이었는데, 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가 갖고 있던 까칠하고 염세적인,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까칠한 오빠'의 이미지는 그의 일부일 뿐이라고.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은 그에게 부여된 하나의 캐릭터일 뿐이지 그는 엄연히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노라고.


그의 전작 <버티는 삶에 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의 결은 꽤나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하였듯이 나 역시 세상을 꽤나 비뚤게 보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사탕 발린 위로보다는 '나도 힘들고 너도 힘든데 어쩌겠어 세상은 원래 이랬어'류의 말에 더욱 위로받는 유형의 인간이다.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후,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유연해졌을 순 있겠으나 여전히 비슷한 편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늘어놓는 성공사례를 듣다 보면 나와 그 들은 태생부터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전히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찬사를 받는다는 말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의 글은 그 시절의 나에게 나 같은 사람이 실패자가 아니라는 하나의 위로와도 같았다. 뾰족하고 단단했던 그의 글이 나에게는 그 어떤 위로보다도 다정했다.


그의 신작 <살고 싶다는 농담>은 팬으로서 개인적으로 기대감이 컸던 작품 중 하나였다. 암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그의 sns에서 올라오는 글들은 전부터 읽어왔던 그의 글과는 조금 더 높은 온도가 느껴졌다. 출간기념회를 대신하여 라이브 방송으로 대체되던 작가와의 만남에서 그의 신작을 미리 읽은 질문자가 했던 말에 꽤나 공감하는 바였다. 그녀의 말처럼 조금은 삐뚠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다소 냉소적이고 차가웠던 그의 시각이 팔짱을 푼 채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가진 느낌이었달까. 실제로 읽어보니 그의 신작은 전작과는 조금은 달랐다. 냉수같이 차가웠던 글의 온도가 미지근해졌지만, 그의 그런 점이 낯설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조금은 따뜻하게 바라본다 해서, 그의 글이 가진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살고 싶다는 농담>은 나처럼 에세이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즈음은 손에 꼭 쥐여주고 싶을 정도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알차게 구성되다'라는 표현이 적합한 표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신작에는 영화평론가로서의 그와 작가로서의 그의 글이 있다. 전작과 신간이 나오기까지의 시간 동안 그의 시각이 변화하던 과정과 그 과정에서 그가 보았던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를 통해 말하는 그의 세상과 그를 통해 나의 세상 역시 조금은 변화하였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실감했다. 공기업에서 월급이 밀려보는 말도 안 되는 일도 겪으며 미치도록 내가 처한 현실과 한국을 싫어했던 26살의 나에 비하여 20대를 해보고 싶은걸 다해본 후,  나를 아끼는 법을 골몰하게 된 지금의 나의 시선 역시 조금은 다정해졌을까.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그가 영화 <라라랜드>를 보고 쓴 글을 무척 좋아하는 바이다. 이따금 마음에 담아두려 몇 번이고 읽게 되는 글들이 있다. 그의 글은,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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