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 유 Jul 05. 2022

<로맨틱 홀리데이> 사랑이기 이전에 나를 찾는 휴가

굳이 혼자서는 보지 않겠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었다. 누군가 최고의 힐링영화라며 추천해준 영화였는데, 왜인지 홀로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외로워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로맨틱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마음이 잘 맞는 동성친구와 본다면 다음에 찾아올 사랑을 기대해보자며 그렇게 미루어왔던 그 영화를 혼자가 아닌 둘이서 보게 되었다. 영화가 주는 달콤함에 속수무책으로 녹아들던 와중 별안간 나를 울릴지도 모르고.


한 회사의 CEO이자 그 비싸다던 LA에서 멋들어진 집을 소유한 성공한 여자 아만다. 공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연애사였다.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난 남자친구를 뒤로하고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던 그녀는 한참 동안 웹서핑을 하다 서로의 집에 바꿔 사는 <홈 익스체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영국 근교에서 웨딩칼럼을 연재 중이며 살아가는 아이리스는 사내연애 중이었던 남자친구가 같은 회사의 동료와 결혼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지고, 그렇게 서로 연애사에 문제가 있는 두 여자는 <홈 익스체인지>를 통하여 각자의 집에 바꿔 살며 2주 동안의 힐링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자 계획한다. 그녀들 앞에 다가올 새로운 사랑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는 2006년 크리스마스를 겨냥하여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영화이다. 원제 <The holiday>에서 배급사가 제목 앞에 로맨틱을 붙인 이유는 이 영화가 사실은 로맨틱 영화이면서 로맨틱하지만은 않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바쁘디 바쁜 도시에 살고 있는 성공한 여자와 근교에 작은 오두막에서 소소하게 살아가는 여자의 집을 바꿔 산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남자주인공 없이 꽤나 로맨틱하다. 현실에 매어있는 나의 삶을 잠시 뒤로하고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으로 불쑥 여정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는 이처럼 누구나 상상하지만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일을 집을 바꾼다는 설정으로 영리하게 풀어내 관객을 이해시킨다. 어쩌면 다른 생을 살아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람의 생활을 잠시 빌려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보면 사랑영화이지만 멀리서 보면 사랑영화이기만은 하지 않는 이 영화의 장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유년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하여 감정을 깊이 체감하지 못하는 아만다와, 인생에서 스스로 언제나 조연을 자처하던 아이리스는 타인의 집을 빌려 과거와 멀어진다. 아만다를 사랑한 그래엄과 아이리스에게 스며든 마일스보다도 그녀들을 성장시키게 한 것은 바로 그녀들의 이웃으로 대변되는 그래엄의 아이들과 아이리스의 이웃 아서일 것이다. 누군가를 쉽게 마음에 들여놓지 못하는 아만다에게 먼저 손을 뻗은 아이들과, 인생의 주연은 나 자신이라며 아이리스에게 일깨워준 원로 영화 시나리오 작가 아서. 아만다와 아이리스가 잘 풀리지 않는 연애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매력적인 남자주인공들 때문이기 보다도, 그 들 스스로가 이뤄낸 성장일 것이다.


여자친구의 바람을 목도하고만 마일스에게 아이리스는 마찬가지로 양다리를 걸친 자신의 전 남자친구를 떠올리며 그에게 위로를 건넨다.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그 혼란의 시간 동안 무의미하게 낭비된 세월도 조금씩 잊혀갈 거라고. 마일스에게 말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 그녀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주문처럼 되새긴 그 대사를 듣고, 눈물이 새어 나오는 것을 애써 손가락으로 누르며 울지 않으려 마음을 추슬렀다. 불쌍히 여긴 건 바닥에 나뒹굴었던 나의 마음들이 아닌 그저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저렇게 뻔한 대사를 듣고도 나를 울린 건 과거의 내가 안쓰러워서가 아닌 영화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달래 보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탑건: 매버릭> 향수와 로망, 세습이 아닌 합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