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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06. 2022

<올드> 공감될 소재, 참신한 서사, 그렇지 못한 결말

영화 <은교>의 노년의 원로시인인 이적요는 청년들을 위한 강연장에서 시어도어 로스케의 말을 인용하였다. 너희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자신의 늙음 역시 벌이 아니라는 말은 노쇄한 육체를 잠시나마 부정하고픈 이적요시인을 대변하는 말이자,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가장 직접적인 대사일 것이다. <식스센스>로 유명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올드>는 로스케의 말처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직각적으로 표현한 영화이자 그래서 더욱 아쉬운 작품일 것이다.


이혼을 논의 중인 부부 가이와 프리스카는 아이들을 위하여 가족여행 차 자녀들을 데리고 한 리조트에 방문하게 된다. 매니저의 추천으로 그들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해변에서 남은 휴가를 보내게 되고, 그곳에 이미 도착해있는 다른 가족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러나 해변가에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곳에 있는 세 가족들은 급작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11살, 6살이었던 아이들이 10대 청소년으로 급작스럽게 성장하는가 하면 외과의사 찰스의 노모가 노환이 깊어져 숨지는 일이 발생한다. 박물관 큐레이터인 프리스카는 해변에서 발견된 시체의 부패 속도를 미루어보아 이 해변가에서는 바깥에서의 30분이 1년일 만큼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고 조현병을 겪는 외과의사 찰스의 증세가 심해지면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닫기에 이른다.

영화 <올드>는 노화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공포를 소재로 차용하여 극을 전개한다. 하루 사이에 갑작스러운 노화를 겪는 이들은 늙어가는 공포를 압축적으로 체감하며 해변을 빠져나가려 애를 쓰지만 그럴 때마다 극심한 두통을 겪는다. 문제는 이토록 참신한 소재를 영화는 중반부까지 잘 써먹는 듯이 보이다 후반부와 결말에 이르러 그저 그런 할리우드식 공포영화로 치환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의 증세가 급속도로 심해지면서 극의 긴장을 불어넣고, 6살이었던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신체적·정신적 성장으로 하여금 성관계를 놀이 즈음으로 여기다 가족들 앞에 배가 부른 채로 나타나는 장면은 가히 경악스럽지만 영화의 그 지점에서 그저 하향곡선을 그릴뿐이다.


극 초반부 살아남은 남매 매덕스와 트렌트가 난관을 헤쳐나가 해변을 빠져나가는 방식을 초반부에 복선으로 깔아 두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주인공들이 희망적일수록 영화는 절망스럽다. 영화의 후반부와 결말은 갑작스럽게 감독의 장점을 모두 잃어버리고 흔하게 보아온 시퀀스를 보이며 모두가 원하지는 않을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주인공들이 고난과 역경을 거쳐 마침내 안전한 곳으로 돌아온 기타 블록버스터 영화와 궤를 같이하는데, 이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의뭉스럽다.


어째서 감독이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인지에 알 수없으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재료가 꽤 가치 있어 보였기에 결말이 더욱 아쉽다. 주인공들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영화가 막이 오르고 기분은 잠시 찜찜하겠으나, 영화를 관람한 그 시간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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