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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18. 2022

<헤어질 결심> 네게 나는 처연함, 내게 너는 애절함

박찬욱식 서정적인 사랑이야기

수상한 살인사건과 이를 파헤치는 형사, 그리고 피해자의 미망인. 히치콕감독의 영화 <현기증>부터 그 유명한 <원초적본능>까지. 때로는 스릴러로, 때로는 에로틱함으로 영화판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익숙한 스토리를 박찬욱감독이 신작으로 내세웠다. 영화는 앞전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매력적인 젊은 과부에게 속수무책으로 매혹되는 형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리석은 형사는 그렇게 파멸하고, 과부는 관객들에게 파괴적인 여인으로 남아 이야기가 완결되는 그런 서스펜스의 결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관객이 예측하는 그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재시작된다.


불면증을 겪는 형사 해준은 한 낙사사건을 맡게 된다. 그렇게 그는 출입국관리소에서 성실히 일하던 피해자 기도수의 부인 서래를 피의자로 처음 마주한다. 남편에게 가정폭력의 흔적이 보이는 미모의 젊은 중국인 과부 서래에게 해준은 점차 빠져들며, 둘은 서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해준이 자신도 모르게 서래가 그저 무결한 참고인이기만을 바라는지도 모르고.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관객에게는 익숙한 소재를 차용했다. 박찬욱감독은 정서경작가와의 작품을 기획하기 전 지금 하기 전과는 다른 결의 작품을 기획하면 어떨까란 생각에서 이 작품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친절한 금자씨>와 <올드보이>와는 다르게 확연히 이 영화는 한 편의 시와 같이 서정적이다. <박쥐>보다는 애틋하고 <아가씨>보다는 차분하다. 박찬욱감독의 영화 중 시 같은 서정적인 영화를 기대하지 못한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가 한 편의 따뜻한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잔인한 장면이 없이 영화는 서스펜스의 기법을 따라가면서도, <아가씨>에서 보아온 연극적인 연출 역시 버리지 않았다. 잔인하고 보고 나면 불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이어도 박찬욱감독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신작이 마침내 나온 것이다.


전작 <아가씨>와는 다르게 명확히 영화를 몇 장으로 끊어내진 않았으나, 이 영화의 전개는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1부와 2부가 나뉜다. 영화는 마침내 살인사건의 진범을 알아낸 해준의 시점으로 끝나가는 듯 보였으나 실은 이 영화가 담고자 한 메시지는 이후 시작되는 서래의 사랑에 있었다. 이정하 시인의 시 '낮은 곳으로'의 마지막 연처럼 서래는 잠겨 죽어도 좋으니 해준이 물처럼 그녀에게 밀려오기를 바라며 자신의 사랑을 미결로써 완성시킨다. 기존에 보인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와 수상한 미망인이라는 클리셰에서는 둘의 사랑은 응당 계산적이거나 혹은 색욕적이어야 하지만 영화는 이 들의 사랑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객의 추측을 비껴나간다. 그렇게 박찬욱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완성시킨다. 그에게서 애절한 사랑은 마침내 완결된 완성이 아닌, 미결된 지난함이다.


서래는 극 중에서 해준에게 자신을 불쌍한 여자라 표한다. 폭력뿐인 사랑에 익숙했던 불쌍한 여자 서래에게 해준의 희생은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강렬한 사랑으로 남는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에 수장된다. 해준이 자신에게 한 때나마 품었던 찰나와도 같은 사랑을 후회하지 않도록. 그가 그녀를 더 이상 실효하지 않은 사건의 증거처럼 거세하지 않도록. 그녀가 수장된 곳은 해준의 발 밑이 아닌 그의 심장 밑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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