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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04. 2022

<문나이트> 마침내 장벽을 없애고 찾은 진귀한 영웅서사

최근 개봉한 두 편의 마블 영화는 모두 여러 쟁점으로 화두에 올랐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스2)는 디즈니 플러스에 스트리밍 된 MCU드라마 <완다 비전>을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었고, 이후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 역시 앞서 개봉한 닥스2 보다는 아니었지만 진입장벽이 존재했다. 영화유튜버 두클립의 영상 중 삐맨과 리뷰엉이, 천재이승국이 참여한 스포일러 잡담회에서 이들은 이제는 마블은 더 이상 모두가 부담 없이 즐기는 오락영화 시리즈라기보다는 스타워즈처럼 고인물 아니고서야 즐기기 힘든 마이너화가 되어간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 <블랙 위도우>와 드라마 <팔콘 앤 윈터 솔저>, <호크아이>가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켰으나 이는 전대에 있던 히어로의 역할을 새로운 '인물'이 계승한 것이니 새로운 '역할'이 등장했다는 표현은 부적합할 것이다. 페이즈4에서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은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이터널스>였지만 이 두 작품 역시 온전히 오락영화로서 호평받기는 어려웠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특색이 너무도 짙었던 <이터널스>는 마블판 예술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샹치는 주인공보다 오히려 빌런이 더욱 돋보이는 다소 부실한 서사가 있었다. 그러나 <문나이트>는 앞선 작품들로 얻은 우려를 깨고, 높아져버린 진입장벽으로 MCU 작품을 보기를 포기한 이들을 유입하기에 매우 성공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겠다.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근무 중인 스티븐은 비록 기념품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집트 역사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못지않다. 매일 자신을 꾸짖는 상사와 이름을 잘못 부르는 동료에게도 크게 주눅 들지 않고 소심해도 할 말은 하고 사는 평범한 소시민인 그에게 어느 날 스스로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몽유병이라 믿었던 그의 꿈이 실은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확신이 되어 가던 순간, 거울 속 그가 그에게 말을 건넨다. 


드라마 <문나이트>는 앞서 말했듯이 페이즈4 이후 새로운 캐릭터를 가장 효과적으로 등장시킨 작품일 것이다. 이미 공고해질 대로 공고해져 버린 MCU의 지난 서사를 전혀 알지 못해도 극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거니와, 마치 MCU의 배트맨을 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원작의 문나이트는 배트맨에 영향을 받아서일 수도 있으나, 고뇌하는 불안정한 영웅을 스릴러의 기법을 활용하여 1화를 강렬하게 시작했다. 다중인격을 앓는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와 이를 이용하는 신 그리고 마치 사이비교주를 보는 듯한 빌런까지. <문나이트>는 <완다 비전> 이후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에 놓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워 탁월한 서사와 연출로 관객도 서서히 극 중 다중인격을 앓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몰입하게끔 만든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제작에도 참여한 오스카 아이작은 씨네21 인터뷰를 통하여 작품을 준비하며 아시아학자이자 해리성 장애를 가진 로버트 옥스남의 <A Fractured Mind>를 읽고 배우로서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를 비롯하여 해리성 장애를 그저 주인공의 특징 중 하나로 소모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노력은 작품의 탄탄한 서사로 빛을 발한다. 영화유튜버 천재이승국은 문나이트 4화 GV를 통해 오은영박사르 초빙하여 극 중 주인공들을 정신의학과 박사의 입장으로 해석한 바 있는데, 오은영박사의 말을 들어보면 캐릭터들이 보이는 성격들이 단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낮은 진입장벽과 탄탄한 스토리, 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위화감 없이 표현해낸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극 중 두 인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미친 연기를 선보인 오스카 아이작과 인생 처음 빌런 역을 맡았지만 그 누구보다 숭고한 악역이 잘 어울린 에단 호크까지. 사실 몇몇 장면에서는 CG가 다소 위화감이 들었지만 이런 단점은 앞서 열거한 장점에 비해 잠시 덮어둘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서방국가 중심의 MCU서사에서 차츰씩 아프리카를 비롯한 그 외 문화권의 신화가 등장한다는 것이 반갑고 이점이 앞서 MCU의 작품을 모르더라도 새로운 관객을 유입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처럼 보인다. 극 중 잠시 히어로로 분한 라일라에게 한 꼬마가 그녀를 향해 이집트 히어로라냐 묻자, 그녀는 그렇다며 우선 아이의 말에 수긍한다. 아이의 입을 빌려 직접적으로 극 중의 주인공들이 '이집트의 슈퍼히어로'로 명명된 순간 <문나이트>를 향한 이집트인들의 쾌재가 마치 브라운관을 넘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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