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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25. 2022

<헌트> 30년 차 직업인 이정재의 깊고 넓은 확장

오랜 세월을 한 직업으로 일하다 보면 다른 길도 열리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브래드 피트 등 배우에서 감독 또는 제작자로 분한 이들을 통해 영화계에서 배우들의 확장을 눈으로 지켜보았다. 작년 <오징어 게임>으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커리어를 확장한 배우 이정재가 이번에는 감독으로 분했다. 그에게 찾아온 호재인지 영화 <헌트>는 이미 <오징어 게임>을 촬영하기 전부터 제작이 진행되었고, 칸을 비롯하여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되는 것과 더불어 13일 연속 개봉 순위 1위에 이미 관개수는 300만 명을 돌파했다. 애초에 감독으로 전향하고 싶어 영화를 연출한 것이 아닌, 맡을 감독을 찾지 못하다 결국 누구보다 이 영화를 잘 아는 자신이 연출하게 되었다는 이정재는 영화 <헌트>로 감독으로서의 성공적인 첫 도약을 이루었다. 영화 <헌트>는 그렇게 관객에게 배우 이정재를 감독으로 인식시켰다.

해외팀 안기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는 북한에서 망명을 요청한 북한 고위 관리에게 안기부 내 스파이 동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신임 안기부 부장은 각각 이들에게 조직 내의 스파이를 색출하라 명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자신의 비밀을 숨긴 채 동림이라 의심하며 각자가 가진 약점을 파헤치기에 이른다.


영화 <헌트>는 앞서 말하였듯이 이정재가 좋은 시나리오를 찾았지만 끝내 이를 맡아줄 작가와 감독을 찾지 못해 결국 본인이 직접 제작하게 된 영화이다. 무려 이정재가 감독을 맡고 주연, 각본, 제작까지 공동으로 맡은 데다가 정우성과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조우했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https://www.youtube.com/watch?v=mF6xumJOVss&feature=youtu.be)에 출연한 이정재는 정우성이 대중이 두 배우의 만남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데다가 배우 출신의 감독이라는 선입견까지 깨야하는 짐을 이정재가 모두 짊어진다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영화 <헌트>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배우 이정재가 쌓아 올린 능력과 재능이 한데 어우러져 관객들이 만족하고 선입견까지 깬 한국형 첩보물로 탄생했다.


<헌트>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30년 차 직업인이 내놓은 하나의 결과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철저하게 계산된 플롯과 오락적인 요소들 그리고 주연급 카메오들을 누가 누군지도 모르게 한 장면에 몰아서 등장시키는 영리함까지. 도쿄의 총격신 스퀀스에서 주지훈을 김남길, 박성웅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을 아는 관객이라면 그가 마치 대단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렇듯 유명한 배우들을 모두 한 곳에 몰아넣는 듯하면서 그중 일부는 맥거핀으로 활용하는 이정재감독의 선택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헌트>는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나뉘는 작품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격동의 80년대를 선택한 것에서 첩보 스릴러물을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녹여냈다는 장점이 있으나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이가 본다면 맥락으로 상황을 유추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 80년대에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크게 어렵지 않겠지만 칸 영화제에서 나온 해외 관객들에 반응이 역시 일부 이해되는 바이다. 더불어 극이 러닝타임 끝을 달려가는 내내 긴장감을 놓게하지 않기에 관객으로서 하여금 집중도와 몰입도를 높이고 장르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지만, 한번 흐름을 놓치면 따라가기 힘들다는 단점 역시 존재한다.


더불어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체적인 한국영화의 단점이라고 지적받고 있는 음향문제와 주연배우들의 대사 전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영화 <헌트>는 이러한 단점을 모두 상쇄시킬 만큼의 장르적 쾌감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이정재감독이 이동진기자와의 대담 중 캐릭터가 가진 명분이 확실하다면, 배우들이 좀 더 힘입어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에 뒷받침하듯이 극 중 캐릭터들은 의문점을 선사하지 않은 채 앞으로 돌진한다.


후반부에 밝혀지는 반전은 철저한 계산과 맥락 하에 등장하며, 흔히 떡밥이라 불리는 복선을 적절히 배치하여 관객이 뒤통수를 맞는 것이 아닌 영화의 마지막 퍼즐을 발견하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더불어 양극단으로 치닫던 두 인물의 합일과 분리를 보여주는 폭탄 시퀀스에서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뚜렷이 전달된다. 이정재감독은 영화 <헌트>가 메시지를 강조한 작품이기보다는, 관객이 보기에 재밌고 잘 만든 영화를 원한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는 그저 관객이 이 영화를 유희하길 바라는 감독의 희망처럼 들린다. 그는 자신이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영화에 투영시켰지만 재미가 메시지에 함몰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관객과 평단이 이정재를 감독으로서 환영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정재감독은 이동진기자와의 대담을 통하여 영화의 에필로그에 대해 지금 세대들이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음 세대들에게 그저 툭하니 던져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다고 답했다. 이는 어쩌면 한 직종에서 20대를 거쳐 50대에 도래한 이가 자연스레 생각하는 실존적인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처럼 자신을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지금 세대’라 규정하고 있지만 그런 그는 지금 세대들에게 여전히 전성기인 배우이다. 전성기를 새롭게 맞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다 보니 문득 그의 데뷔년차와 내 나이가 얼추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그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스타임이 의심치 않는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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