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온몸에는 고데기 화상자국을 가진 여자 문동은은, 자신의 10대를 파괴한 가해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고자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다. 마침내 긴 복수의 여정을 시작한 그녀의 눈앞엔 죄의식이라고는 볼 수 없는 가해자들의 뻔뻔함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문동은은 자신이 곧 신이 되어 그들에게 흉흉한 날들을 선사하고자 한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이라는 주요한 사회문제를 다시 화두에 오르게 한 작품이자, 멜로에 특화되어 있던 김은숙의 쫄깃한 대사가 복수극이라는 장르를 만나면 어떤 시너지효과를 내게 하는 지를 알게 한 작품이다. 데뷔 초 연기력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임지연은 <더 글로리>를 통해 배우인생에 터닝포인트를 맞았으며, 주로 비중이 적은 조연을 맡거나 혹은 유명세가 높지 않은 배우들이었던 박성훈, 차주영, 김히어라, 김건우, 정성일은 대중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무엇보다 묵직한 목소리로 시종 건조한 대사를 읊지만 그 안에 내재된 아픔을 무엇보다 잘 표현한 송혜교와 그녀와 케미를 이룬 염혜란, 자칫 오글거릴 수 있는 대사를 나름대로 잘 소화한 이도현과 자신의 몫을 잘 소화한 아역들까지. 연기구멍 없는 배우들의 호연과 김은숙의 극본이 만나 대중들에게 학교폭력의 파괴성에 대해 몸소 각인시켰다. <더 글로리>는 이처럼 극 안팎으로 꽤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시종 대조를 이루며 극을 메꾼 작품이다. 김은숙작가가 시즌2 제작보고회에서 밝힌 바 있듯이, 신을 믿는 자와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위치가 결국엔 치환되는 결말을 맞는다. 샤머니즘과 기독교 등의 종교를 믿는 가해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신의 가호를 받는 양 의기양양하였지만, 결국 신을 믿지 않은 문동은 앞에 신이 직접 박연진의 조력자를 벌전하는 모습과 가해자들의 말로를 통하여 신의 존재를 귀납적으로 유추하게 한다. 더불어 늘 화려하게 살던 조연들이 모두 빛없는 곳으로 추락하는 것과 대비되어 문동은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환한 햇살을 내리쬐는 결말로 대조를 이룬다. 가해자가 갑이고 피해자가 을이었던 상황이 피해자가 갑이고 가해자가 을이 되는 과정을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면서, 피해자들의 아픔 역시 쉽게 놓치지 않는다.
다만 극 중 남자주인공인 주여정보다도 강현남과의 케미가 더욱 인상적인 것이었던 지점과 더불어 주여정의 맹목적인 사랑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마치 주여정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김은숙이 아직 버리지 못한 멜로드라마적 습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서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면서 동시에 장르물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 수작임이 분명하다. 김은숙표 장르물이 앞으로도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아울러 현실에서도 수없이 벌어지고 있을 비인간적인 폭력 앞에서,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어린 짐승들에게 훌륭한 교육자료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자신들이 응당 써야 될 곳인양 화장실을 독차지하며 고데기를 사용하던 그들의 모습을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비록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진 않았으나, 언제라도 해를 가할 수 있음을 암시하던 그 모든 몸짓들이 가해였다는 것을 그들은 영영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