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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12. 2023

토이스토리의 앤디, 디지몬 어드벤처의 태일이 그리고 나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을 보고서

<토이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서 눈물을 참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디와 앤디가 작별하는 그 시퀀스에서 앤디 곧 나였고, 우디는 나의 유년시절이었다. 지금도 귀여운 것이라면 정신 못차리는 나는 어린시절, 추억의 물건들을 일부  처분하였을 때의 그 허전한 마음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그저 유년시절이 그리운 것을 넘어서 다시는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서로가 알아버렸을 때의 그 헛헛한 마음이란. 가히 누구보다도 잘 표현한 명장면이었다.


90년대생이라면 투니버스에서 해주던 <디지몬 어드벤쳐>를 다들 기억할 것이다. 투니버스의 전성기는 곧 나의 유년시절이었고, 이 시기에 만화를 꽤 많이도 보았다. 그중 나는 sbs에서 방영하던 포켓몬시리즈보다도 디지몬 어드벤처를 더욱 좋아했는데, 이유는 스토리의 쫄깃함 때문이었다. 포켓몬보다는 몬스터에 더욱 가깝게 생긴 디지몬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내 주변엔 얼마 없었지만 명절 때에도 디지몬 어드벤쳐가 시작할 때면 어른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TV가 있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비밀의 열쇠로 시작하여 현실과 또다른 세상인 환상의 디지털세상까지의 오프닝송을 듣고나면 다가올 모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도 아구몬이 스컬그레이몬으로 진화했을 때의 충격과, 파닥몬이 엔젤몬으로 진화했을 때의 경이로움, 결말에서 주인공들이 벌인 최후의 전투를 잊지 못한다. 그만큼 내 마음 속에서의 유년시절 최애 애니메이션은 디지몬이었다.

그런 디지몬 시리즈가 올드팬들의 애정을 식게 만드는 몇차례의 시리즈 이후에,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으로 성장한 태일이와 매튜를 등장시켰다.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이하 디지몬 라스트 에볼루션)은 사실 지난 시리즈와 이어지지않는 설정파괴를 꽤 많이 담고있으며 이에 호불호도 많이 갈리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디지몬 어드벤처의 초기 시리즈를 투니버스에서 본 나같은 사람들이 별다른 시리즈를 보지 않고 곧바로 이어서 이 작품을 본다면 꽤 괜찮은 작품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토이스토리 3>마지막 장면에서 느꼈던 그 감동을 꽤 비슷하게 느꼈다.


극 중 선택받은 아이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파트너 디지몬과 해지되는 설정을 지닌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물론 일이야 잘 해결하였지만, 애초에 설정이 어른이 되면 파트너 디지몬과 이별을 맞는다는 것이 꽤 의미심장하다. 대학교 졸업만을 목전에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는 매튜와 태일이의 상황이 꽤 현실적인데다가, 디지몬을 학교에 데려가라는 매튜의 제안에 나도 내 생활이 있다며 답하는 태일이는 몹시도 현실의 20대와 닮았다. 빌런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역시 피터팬의 네버랜드인 것을 생각해본다면, 붙잡고 싶은 유년시절을 억지로라도 이어가려는 자와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자의 대립같기도 하다.

<디지몬 어드벤쳐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은 분명 설정구멍과 지난 시리즈와의 충돌이 많은 작품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어린시절 선택받은 아이들과 함께 꿈꿔온 이들이라면 작품이 갖는 구조적 결함은 눈감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주고 나이를 먹으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성장을 얻는다. 성장에 따른 상처를 하나둘 씩 받다보면 알게 모르게 나만이 갖는 계산법이 생긴다. 그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우정,사랑을 꿈꾸던 유년시절의 나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이를 결국 받아들이며 어른이 되는 과정을 태일과 매튜는 선택한다. 아구몬은 태일이에게 너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고 말한다. 이 말에 위로받는 이는 비단 태일이 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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