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 유 May 02. 2023

배우의 이미지가 개연성의 일부가 될 때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를 보고

일상에서 스마트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불가분의 영역이다. 전화공포증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화면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다 보니 통화가 무서운 세대가 등장하였으며, 유튜브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지문을 포함한 모든 생체정보가 등록된 데다가 지갑까지 대신하는 세상이다 보니 모든 개인정보가 이 조그만 기계 안에 다 들어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요, 그 말인즉슨 나를 누군가 쉽게 사칭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는 이러한 현 풍조를 누구보다도 잘 반영한 영화이자, 최근까지 개봉한 현실밀착형 스릴러 중 가장 현실과 밀접하다고도 볼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핸드폰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즘사람 나미는 실수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숙취로 졸다 그만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미의 핸드폰은 어떤 젊은 여성이 습득하게 된다. 실수로 나미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려 수리점에 대신 맡긴 핸드폰을 찾은 그날 이후, 나미의 핸드폰은 실시간으로 해킹되어 그녀의 일상이 파괴된다. 그렇게 분신과도 다를 바 없는 스마트폰은 그녀의 인생을 파괴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만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는 시가 아키라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발표 후 화제의 이 소설은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 히든카드상을 수상하였으며, 출판 이후 일본에서는 웹툰과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북플라자에서 국내에 출간하였다. 원작에서는 핸드폰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면 국내영화는 제목과 일치하도록 스마트폰을 실수로 '떨어트림'으로서 극의 시작부터 긴장감을 부여한다. 첫 오프닝시퀀스에서는 스마트폰의 전지적 1인칭 시점으로 핸드폰화면과 나미의 하루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나미 즉 현대인이 일상에서 어느 정도 스마트폰에 의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서사를 부여한다. 사실 앞서 언급한 시퀀스는 영화의 한 씬보다도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다.

다만 영화는 초반에 나미가 스마트폰이 해킹되면서 일상이 파괴되는 지점이 극의 초반에만 등장함으로써 소재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호기롭게 출발하였던 초반 시퀀스와는 달리 영화는 범인이 해킹을 통한 나미의 일상을 파괴하는 것보다는 직접적인 가해(살해)에 목적을 두고 있는 관계로 점차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는 범인과 나미 사이의 매개로 변모한다. 영화의 러닝타임 중 관객이 기대하는 바가 실현된 것이 고작 3분의 1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는 '스마트폰으로 일상이 파괴된 스릴러'라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살해위협'에 관한 내용이라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심지어 나미가 살인범의 최종 목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중반부에서는 잠시 힘이 풀려버린다.


그러나 이 영화가 선택한 가장 영리한 점은 배우가 지닌 기존의 이미지를 극의 개연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용했다는 것이다. <멜로가 체질> 등으로 넘사벽에 가까운 미인으로 묘사되기보다는 친근한 이미지를 주로 맡았던 배우 천우희의 이미지와, 배우 임시완의 잘생긴, 멀끔한 이미지를 그대로 이용함으로써 두 배우가 지닌 매력을 곧 개연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임시완이 접근하는 것에 천우희가 호감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배우가 가진 마스크 덕일테며(공통점이 있다는 것 외에는 둘의 서사는 빈약하다) 천우희의 친근한 이미지는 나 혹은 내 친구가 겪는 고통과도 같이 현실로 다가오게 만든다.

<숨바꼭질>, <도어락>, <목격자>에서부터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까지. 그간 발표된 생활밀착형 스릴러 중 그나마 가장 개연성이 있으며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로 초반 극의 몰입도를 휘어잡은 작품은 본작일 것이다. 상상력과 도시전설에 의존했던 기타 스릴러영화와는 달리 스마트폰 해킹은 누구라도 알 수 없는 파일만 설치하면 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알고 보니 우리집에 나 말고도 누가 살았다던가, 우연히 살인사건을 아파트 단지 내에서 목격하였다던가 등의 일보다는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다만 초반의 입김과 원작의 각색이 조금 더 보태졌다면 영화의 완성도가 달랐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는 앞길로 잘 가다가 샛길에서 다시 돌아와 목적지까지 향했으나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 마라토너와도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이스토리의 앤디, 디지몬 어드벤처의 태일이 그리고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