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에게 고해성사를 하신 당신께

저도 책 많이 못 읽어요

by 사서 유

내가 사서라고 밝히면 몇 가지 반응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 도서관에 발길을 끊고 산 사람 (주로 이 부류는 마치 나를 다른 생명체로 보고는 한다.)

2. 책을 싫어하는 사람(1번과 마찬가지이다.)

3. 책을 좋아했지만 최근 독서량이 적은 사람 (이 경우 갑작스럽게 자신의 독서습관을 반성한다.)

4. 애서가인 사람(눈빛이 반짝인다.)

5. 학창 시절 도서부였던 사람(서로 반가워한다.)


여기에 번외로 살면서 사서는 처음 본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면 사서가 흔하지 않다는 그들의 말을 실감하고는 한다. 어떻게 책을 좋아할 수 있냐는 물음에 멋들어진 대답대신 멋쩍은 웃음으로 답한다. 나도 왜 내가 책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책 외에도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서 영화와 책을 동시에 좋아하게 된 것 아닐까 하는 짐작해 볼 뿐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주방에서 일할 때 주방장오빠는 나보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었다. 오빠는 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좋아했고, 나보다 더 문학에 해박한 사람이었다. 그가 장난스럽게 내가 일하는 도서관에 가지 않겠다고 말할 때 멋쩍게 웃음 짓곤 했지만 찔리는 속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온통 책에 둘러싸인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의외로 업무시간에 책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책을 보는 것이 노동으로는 보이지 않아 따로 시간을 내게 된다는 말을 한다면 핑계라고만 하려나.


사서로 일하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개인의 흥미로서 책을 읽고 싶다는 독서욕구는 꽤나 다른 양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노동을 하는 기분이었고 후자는 휴식에 가까웠다. 전자의 목적으로 책을 읽다 보니 후자에 접어드는 책도 있었고, 후자의 목적이 전자가 되어버린 적도 있었다. 사실 애초에 뚜렷하게 구별되기도 힘든 것이어서 책을 두루 읽는 것이 정답이라 믿고 산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었을 때 응당 따라오는 값이라는 것을 알기에 딱히 어떤 투정을 부릴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어찌 되었던 글의 요지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하나의 과제처럼 느껴지지 않아야 글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독서와 학습독서는 엄연히 다른 것이므로 독서를 하다 보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장점들에 집중하다 보면 책을 읽는 근원적인 목적을 잃고 만다. 이 두꺼운 책 안에 어떤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사로잡을지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 이 욕구에 쫓아 눈길이 가는 책을 한 권씩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을 읽는 것이 넷플릭스를 보는 것처럼 당연한 일상의 하나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반골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의무감이 동반된 유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지론이다. 세상엔 영화가 등장하기 전 문자로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다 보면 비문학에도 손이 가는 날이 올 것이다. 알고 싶다는 욕구는 비단 이야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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