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던 작가지망생
나는 어릴 적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왜 이러한 꿈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영향과 특히나 책과 영화를 모두 좋아하던 엄마의 영향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글 쓰는 재주가 있어서 곧잘 학교에서 글짓기 관련 상을 받았고, '글 잘 쓰는 아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채 유년시절을 보냈다. 책 자체를 좋아해서 실제 독서권수와는 상관없이 학교도서관을 자주 찾았고, 고3 때에는 입시를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로 중점을 두어 준비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흔한 입시과외 없이 대학 두 곳에서 각각 열린 공모전에 당선된 게 운이었다. 훈련과 노력이 부족했던 나는 붙었다는 기쁨에만 취해 백일장엔 보란 듯이 떨어졌고, 급히 진로를 틀어 대학순위 없이 순전히 학과만 보고 학교를 골랐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과를 포기하면 괜찮은 국립대에 갈 수 있다며 나를 조경학과에 추천하셨는데 공원을 좋아한다고는 하나 식물을 연구할 자신은 없었다. 무엇보다 학과마저 책과 상관없는 곳을 가게 된다면 작가의 꿈이 영영 멀어질 것만 같았다. 지금의 입시사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문헌정보학과'는 당시만 해도 인기 있는 학과가 결코 아니었다. 단순히 책과 멀어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도서관사서를 선택했기에 이 학과를 고른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있는지도 몰랐을 터였다. 학교를 입학하고 나니 오히려 학과를 알고 온 학생은 소수에 불과했고 다들 어찌어찌 성적에 맞추어 온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한 수순인지 옆자리에 우연히 앉은 친구 S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한 친구이자, 당시 학과를 이해하고 몇 안 되는 동기였으며, 지금도 사서 일을 지속하고 있는 유일한 친구이다.
책과 멀어지기 싫어 선택한 학과가 그대로 직업이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책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순전한 궁금증으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았는데 고3 때 나의 희망직업란에 사서라고 적혀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당시에는 급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딴에는 살길을 열심히 골몰한 모양이다. 학과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14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나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서가 되려면 무슨 학과를 나와야 해요?'라는 질문이 10년이 넘은 세월도 이어지는 걸 보면 여전히 인기 있는 학과는 아닌 것 같다. 학과명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최근 사서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는 이런 대답도 내놓았다.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에 정보는 주로 문헌에 있었기에, 책과 정보를 함께 다루게 된 것이지 오로지 책만을 위한 직업은 아니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는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정보를 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그릇이 책이라면, 그 그릇을 관리하고 공유하는 승계자가 사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