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지 말라던 부장님의 당부

모교이자 첫 직장인 ○○중학교에서 (1)

by 사서 유
게티이미지뱅크

본가와 대학교가 멀었던 탓에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동기들과는 달리 나는 나 스스로 구직난을 돌파해야만 했다. 운 좋게도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이자, 모교인 ○○중학교에서 사서를 구하고 있었고, 나는 당시 기피학교로 소문난 그 학교에 운 좋게도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른 졸업인 데다가 졸업예정자의 신분으로 면접을 본 탓에 당시 교무부장님은 내 남동생의 과거 담임선생님이셨다. 나 역시 내가 중학생일 때 선생님께서 여전히 부장으로 근무하고 계셨고 그 덕에 첫 학교가 그리 낯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회경험이 쌓인 지금은 면접에서 쏟아지는 질문만으로도 근무지의 위기와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엔 어리고 사회초년생이었기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선택했다. 도망가면 안 된다는 교무부장님의 말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이다. '도망을 왜 가지?'라고 생각했던 순수한 나는 그 말이 그 어떤 위험신호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도망갈 정도로 힘든 학교라는 것을 인수인계 때부터 알게 되었다.


동네가 좁고 개발되지 않은 동네에 위치한 그 학교는 'ㅈ소기업'을 떠오르게 했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인원도 적었고, 인원이 적다 보니 모든 교직원의 업무량은 과중되었다. 게다가 복도에서 아무렇지 않게 욕설을 내뱉는 중학생 아이들은 정은 많았으나 거침없었다. 이 학교의 유일한 장점은 정이 많다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그 덕에 교무부장님은 나를 옆에 앉혀놓고 공문서 쓰는 법부터 알려주셨다. 당시에 나는 고작 중학생과 5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는 내가 또 다른 제자처럼 보였을 터였다. 대학선배인 B언니가 알뜰살뜰 모든 도서관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신 덕분에 1인체제인 그곳에서 용케 버틸 수 있었다.


인수인계를 할 당시에 전임자인 선생님께서는 경력이 어느 정도 있으신 분이셨고, 성품도 좋은 분이셔서 그 후에도 한동안 오래 연락을 주고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새파랗게 어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보고서는 다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셨다. 지금으로 터 무려 14년 전, 당시엔 교육공무직원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할 때였고 275일이라는 희한한 계약방식이 있었다. 1년 중에 실제로 275일만 근무를 하는 것이었고 근무하지 않는 달에는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열 달 치 월급을 12개월로 나누어서 받았고 그러다 보니 월급은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1인체계인터라 경력이 매우 중요했던 학교도서관에 그래도 졸업 전에 취직했다는 안도감이 커 월급은 흐린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 많은 학교에서 방학에 아이들이 적게 온다는 이유로 275일 계약을 더러 했다. 당시에는 그게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중학생 때 자주 드나들었던 도서관은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그대로라 신기할 따름이었고 정은 많지만 다소 억센 이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1년을 잘 보낼 수 있을지 고민되었다. 드디어 직장인으로서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혼자서 모든 살림을 꾸려낸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는 몰랐다. 교과서가 책이라는 이유로 기안문도 이제 겨우 쓰는 내가 교육과정을 이해해야 하는 그 업무를 맡고 있었을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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