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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12. 2018

[시드니 D+0] 롤러코스터 탑승 전

출국 전, 그리고 광저우 공항에서

"집 떠날 생각에 신났어."


나이만 먹은 과년한 딸을 또다시 외국으로 보내야 하는 엄마는 마지막 날 밤에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나뿐인 딸임에도 불구하고 목석과 같은 나는 그날만큼은 애교를 부리며 엄마품에 안겼고, 몇 달을 못 버티고 올지라도 창피해하지 말고 돌아와도 된다는 엄마의 말은 위로가 되었지만 그 말에 어떠한 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시드니 길 한복판에 나 앉는 일이 있더라도 1년은 채우고 올 심산이었다.


호주행이 결정되자 SNS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노라 동네방네 소문을 내었고, 그 덕에 출국하기 전 가족들과 친구들을 두루 만났다. 친구들이 써준 편지와 대학 시절부터 연을 쌓아온 언니 오빠들이 쥐어주신 소정의 용돈과 롤링페이퍼를 고이 가방에 챙겨 넣으며, 힘들 때마다 꺼내보리라 다짐하였다. 돌아올 곳은 없다며 다짐하고 떠난 호주행이었지만 막상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은 통장에 들어있는 4백만 원의 초기 자본금보다도 의지가 되었다.


그렇게 출국길에 오르고 떨리는 마음에 제대로 잠도 못 이룬 채 광저우 공항 라운지에 도착하였다. 당시 나처럼 설레임에 부풀어있던 지안이와 인사를 나누고 그래도 비행길을 함께할 동지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가족에게 생존신고를 마친 후 널찍한 호텔방에 홀로 남겨지자 몇 시간 후면 생면부지인 낯선 곳에 도착한다는 것에 가슴이 떨렸다. 마치 두려움을 안고 밑으로 고꾸라지는 사람들의 괴성을 들으며 줄을 서던 롤러코스터 탑승 전처럼. 지금이라도 당장 대기선을 뛰쳐나와 나는 사실 겁쟁이었소를 외치며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과 혹여나 소름 끼치게 짜릿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이 공존하였다.


한국에서도 수입이 없으면 불안에 떨던 내가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던 데다 호주를 가기 위해 내가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리자 1년 후에는 어떠한 성과라도 만들어 귀국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휩싸였다. 내가 원해서 떠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꼭 왔어야만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반문하며 밤을 꼬박 새울 지경에까지 이르자 비단 이 것이 진정 롤러코스터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느냐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몰려왔다.


평생은 탈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롤러코스터에 앉아 바닥을 향해 온 몸이 곤두박질칠 때, 심장이 배꼽까지 내려앉는 기분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괴성을 내지를 수 있는 쾌감이 들 때처럼. 지금 이 두려움은 찰나에 해소되고 어느덧 이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오리라. 앞으로 닥칠 1여 년간의 시간을 애써 놀이기구에 비 유하 고나니 그제야 잠이 쏟아졌다. 마치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던 그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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