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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25. 2018

[시드니 D+6] 내 집은 어디에

시드니에서 자취방 계약하기

시드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도저히 흐르지 않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모아나를 보던 나는, 극 중 모아나가 드넓은 바다 한복판에서 'I`m moana!'를 외치던 순간에 감동을 받아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당시 시드니를 떠나기 위해 내가 내려놓았던 것들과 주위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들, 그것들을 한 몸에 받을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잃지 않으리라 다짐들. 그러한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애들 보는 만화에 감동을 받아버린 것이다. 마치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더 이상 착한 소녀는 없다며 선포하였을 때 몇몇 어른들이 그렇게나 감동을 받았더라는 이야기처럼.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호주인 아저씨에게 나의 이 불안함에 대하여 토로하고, 생전 처음 본 낯선 외국인에게 위로받으며 광저우에서 만난 지안이와 인사 후 간신히 호스텔에 다다렀을 때, 호스텔(Base Sydney)에 가득한 유럽인들의 아우라에 괜스레 위축되어 방으로 도착하자 먼저 와 묵고 있던 룸메이트들이 나를 반겼다. 방에 곧 농장으로 떠날 프랑스인 친구 한 명과 모델로 활동하던 영국인 친구, 그리고 나와 같은 한국인인 원주가 있었는데, 대학생이던 원주는 같은 한국인이었던 나에게 제법 많은 것들을 질문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 넷은 호스텔 옆 펍도 가보는 등 짧은 시간 안에 꽤 즐겁게 보내었다. 이토록 내가 무리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원주의 밝은 성격과 친화력 덕분이리라.


호스텔에 머무는 동안 지안이와 함께 핸드폰도 개통하고 오페라하우스도 가보며 관광객 인양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어서 서둘러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못내 마음이 무거웠다. 런던의 빅벤을 연상시켰던 타운홀도, 호주 드라마에서만 보던 오페라 하우스를 볼 때에도 호스텔 생활을 어서 청산하고 집을 구해야 이 호사스러운 광경도 눈에 들어올 것 같았달까.

시드니 타운홀 (Sydney Town Hall)
퀸 빅토리아 빌딩 (Queen Victoria Building)
오페라 하우스 (Sydney Opera House)

호주행이 결정된 후로 나는 새벽에도 잠을 못 이룰 만큼 온갖 정보들은 닥치는 대로 수집하였는데, 그중 큰 지분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집'이었다. 26년을 살았던 한국에서조차 당장 홀로 이사를 하라 하면 어디서 살아야 할지 막막할 것인데 하물며 생전 가보지도 못한 시드니라니. 인터넷에 올라오는 각종 정보들을 습득하고 그 속에서 홀로 시뮬레이션에 가까운 상상을 끝낸 후, 가기도 전부터 홀로 피어몬트에서 자리를 잡을 거라는 내 기대는 집을 구하기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대 여섯 군데가 넘는 집을 인스펙션 해보며 들었던 생각은 시티에서 돈과 접근성, 집의 컨디션 이 세 박자가 고루 갖춰진 곳에서 사는 것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아무렴 워홀이 고생길이더라도 도저히 내 방만한 곳에서 이층 침 대살 이를 버텨낼 자신이 없었고, 이곳에 살면 행복하겠다까지는 아니어도 호스텔 생활이 그리워질 수준의 집들은 피하고 싶었다. 이러다 노숙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던 찰나 우연찮게 검트리에서 새 집과도 같은 집을 발견하게 되었고 인스펙션 후 곧바로 그 집과 계약하게 되었다. 다소 동네가 휑하기 했어도 사람 좋아 보이는 집주인 부부와 좋은 컨디션이었던 집, 그리고 당시엔 몰랐지만 버스 타고 30분이면 시티에 도착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집 앞에 널찍한 공원이 있다는 것이 퍽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마침내 방에 룸메이트 자리가 비었던지라 당시 버우드에서 계약을 새치기 맞고 갈 곳이 없어진 지안이를 우리집에 불러들였고, 그렇게 광저우에서 만난 지안이와 시드니에서 난생처음으로 방을 공유하며 살게 된 것이다. 여담으로 지안이 이후로 나는 한국인 룸메이트를 맞지 못한 덕에 지안이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한국인 룸메이트가 되었다.

내 몸 하나 누울 곳을 찾기 위하여 생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이곳저곳 후비고 다니는 과정에서 인스펙션은 하나의 여행과도 같았다. 한국에서 자취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내가 이곳에서 영어로 문자를 보내고, 약속을 잡고, 방을 보러 다니고 설명을 들으러 다니다니. 워홀이 아니고서야 해볼 수 없는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자, 나는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제법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려와는 다르게 내 고향과 비슷한 이국의 도시에서 터를 잡고 처음 만난 사람과 방을 나눠야 한다는 부담감이 지안이가 룸메이트로 들어오며 눈 녹듯 사라지자, 이 모든 것들이 그럼에도 잘할 수 있어라며 등을 토닥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집을 찾던 일련의 과정들이 이 곳에서만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사실에 고생한 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마치 몇 번이고 실패한 보물 찾기에서 드디어 꽝이 아닌 다른 것을 손에 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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