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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03. 2018

[D+7] City of Stars

영롱히 빛나던 타운홀의 야경이 원망스럽던 날

영화 <라라 랜드>에서 극 중 세바스찬은 노을이 지는 다리를 건너며 이렇게 노래했다. 이처럼 빛나는 별이 새롭고도 황홀한 시작을 알리는 것인지 혹은 내가 이룰 수 없는 또 하나의 꿈을 말하는 것인지를. 벌써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무심히 빛나는 도시의 야경과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 외롭고도 쓸쓸한 길을 혼자 걸으며 부르는 세바스찬의 노래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쓸쓸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전부터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함께 부른 <City of Stars>보단 그가 홀로 부른 <City of Stars>를 더욱 아꼈다. 영화 전반에 깔린 세바스찬의 쓸쓸하고도 공허한 모습이 다 담긴 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니까.

호주에 온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볼일을 마치거나 동생들을 만난 후 숙소로 돌아올 때마다 눈부시게 빛나는 타운홀 앞에서 마냥 서성거렸다. 저녁 8시가 넘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한국의 서울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벌써 익숙해진 탓인지 숙소로 향하는 거리가 전처럼 무섭게 느껴지지 않은 터였다. 그날 밤 역시 타운 홀 앞 벤치에 자리를 잡기로 한 나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마치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연신 사진을 보내며 시드니의 야경을 자랑했다. 몇 번이나 사진을 전송하고 채팅창에서 오가던 시시한 대화들도 멈추자, 나는 핸드폰을  무릎에 덮은 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이어폰을 꺼내어 한국에서 수 없이 들었던 세바스찬의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착륙하기 전까지 보았던 영화가 내심 떠오르기도 하였고, 지금 같은 야경에 <City of Stars>만큼 더 어울리는 노래를 찾을 수 없을 터였다. 호주에 도착하여 줄곧 집만 알아보러 다니던 나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서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펍을 갈 여유도 없는 터라 그저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영롱하게 빛나는 타운홀을 등지고 있는 처량한 신세였지만.

출구에서 나와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자니 이곳에서 곧 일을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잠시 우울하였다가, 이제 막 도착한 듯 설레는 마음을 안고서 숙소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보자니 이곳에서 나는 아직 여행자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자니 이토록 공허한 이유가 어쩌면 연애 휴식기 때문만은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고, 내 주위엔 힘들면 토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우스갯소리로 핑계를 대었던 연애 휴식기가 정말 그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곳에 와서까지 연애를 논하냐며 스스로를 꾸짖었다.


더불어 나는 앞으로 이곳에서 먹고살아야 하는 일을 구해야 한다는 중요한 책무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떠안고 있던 모든 걱정거리들 중 대다수가 해결되자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마저 들었다. 사실 호주행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에 온 시간을 영어공부로 할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고, 막상 도착하여 그 압박감에서 해방되자 갑작스러운 자유를 얻은 셈이었다. 나는 이토록 눈부신 도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온통 방황하는 기분이었다.

수 없이 보았던 영화의 장면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남자 주인공이 그토록 지우고자 하였던 기억들을 붙들었던 장면이 그러하였고, 트루먼쇼에서 옅은 미소를 띠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주인공의 모습도 그러하였다. 세바스찬의 당시 심경까지는 알 수없다 할지라도 감독의 의중만은 알 것 같았다. 그 역시, 예쁘게 빛나는 밤하늘이 어딘지 모르게 원망스러운 날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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