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대홍수>는 작품 안팎으로 논쟁이 많은 영화이다. 영화의 완성도와 만듦새에 대해선 관객들 대부분이 최악으로 평가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평작이라는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품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허지웅작가와 황석희번역가는 양질의 평을 보고 싶다는 논지로 SNS에 글을 올렸다. 허지웅작가의 표현은 조금 더 과격했고, 황석희번역가가 좀 더 돌려 돌려 유순하게 말했지만 요지는 작품에 대한 비난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였다.
영화 <대홍수>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소행성의 충돌로 고층아파트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홍수가 일었고, 6살짜리 아들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은 이 난장판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대홍수>는 SF와 재난영화를 섞은 영화인데 사실 이 영화가 관객의 혹평을 받는 이유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제목과 예고편에서부터 '대홍수'가 영화의 메인일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실은 인공지능에 관한 영화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홍수로 인해 인류는 멸종위기에 쳐했고 대체인류에게 필요한 이모션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AI를 끊임없이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는 이야기이다.
같은 상황 속의 과거로 반복하여 돌아간다는 것은 영화 <소스코드>, <엣지 오브 투모로우>등이 떠오르며 물이 범람하는 재난영화는 <더 임파서블>이 떠오르기도 한다. 떠오르는 레퍼런스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 관객들에게 '당혹감'을 선사한다. 재난영화로 시작될 줄 알았던 이 영화에서 사실 대홍수는 그저 이야기의 한 배경과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평범해 보였던 모자지간이 사실은 엄마는 대단한 인공지능 연구원이었고, 아이는 복제인간인지 대체인간인지 혹은 안드로이드인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모종의 생명체이다. 과학적 발전도 영화에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 <아바타>처럼 이미 성장한 개체를 3D 프린터로 만드는 일만 해도 비현실적인데 여기서 영화는 3D프린터로 성장할 수 있는 인류를 만든다.
문제는 이 영화 속 배경이 이런 대단한 과학기술의 발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공간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인류를 만들어내는 대단한 과학기술을 가진 근미래이지만 그 과학기술은 비인가기관이라는 간단한 설정으로 퉁쳐버린다. 각본이 게을러 벌어지는 일은 비단 이 것뿐만이 아니다. AI의 강화학습과정을 모성애로 그럴듯하게 그려보려는 시도는 괜찮았으나 이 과정에서 영화는 세세한 설정들은 뛰어넘은 채 '스스로 학습하는 AI'이 한 줄의 설정에 의지한다. 크리스토퍼 놀란까지 가지 않더라도 국내 유명한 SF 소설가인 김초엽작가 역시 이야기를 구축할 때 논문을 참고한다. 판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세계관인데 하물며 앞에 과학이 붙는 SF는 오죽하랴. 영화 <대홍수>의 가장 큰 실패요인은 각본이 게으른 탓이다.
물론 이 영화의 문제점은 그 외에도 수두룩하다. 잘 만든 장르영화들은 사실 겉으로는 장르문법을 파괴한 것처럼 보이나 실은 장르문법을 '비튼 것'에 가깝다. 영화 <대홍수>는 SF와 재난영화 이 두 장르만 섞은 것처럼 보이지만 도중엔 액션신까지 있어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게 만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영화가 그래도 'AI의 딥러닝, 강화학습'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꽤나 참신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던 이 영화의 작품 외적으로의 논쟁은 이 영화를 향한 비난이 어디까지 감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7광구를 극장에서 본 뼈아픈 과거가 있는 나에게 이 영화를 7광구와 비교하는 것은 조금 아쉽다. 7광구는 애당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의욕상실 상태에서 어디서 많이 본 영화를 그대로 가지고 와 배우 본연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재활용한 수준에 불과했다면 적어도 영화 <대홍수>는 감독의 시도와 열정이 조금은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감독이 못 만들었다는 점에서 어느 수준까지의 비난과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자뭇 고민해 볼 만하다. 더불어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된 것이 어느 정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이 갖고 있는 단점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한 점에서 황석희 번역가의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하는 편이다.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고, 이 영화가 못 만든 작품인 것도 분명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지 않고 비난하기엔 이르다. 본문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훌륭할 수도 있었던 소재를 귀찮다는 이유로 설정을 건너뛰어버린 다소 아쉬운 작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