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1편을 처음 극장에서 보았을 때 느낀 경이로움을 잊지 못한다. 감독이 견고히 만든 설정아래 실제로 존재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생한 세계에 압도당한 것이다. 이후 아바타 1편을 시간이 지나고 좁은 TV화면으로 다시 보았을 때 깨달았다. 내가 이 영화를 몇 번이나 관람한 이유는 바로 간결하면서도 올곧은 이야기의 힘이었기 때문이라고. 1편의 서사는 개척 역사의 사죄와 생명의 중시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서 캐릭터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극의 방향을 제대로 이끌고 있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속편인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했을 때만 해도 아쉬움은 남았으나, 이 아쉬움은 후속 편 <아바타: 불의 재>에서 상쇄될 것이라 여겼다. 결국 기대와는 달랐지만.
<아바타: 불과 재>는 전편에서 제이크의 선택에 의구심을 가진 관객들에게 그가 틀렸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부족으로 이주해 오면서, 그 부족에게 가해지는 피해와 극복이 2편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그 이야기의 연장선이다. 1편이 제이크, 네이티리, 쿼리치대령 이 3명이 중심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2편부터는 이야기의 구심축을 담당하는 인물들이 늘어나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2편에서는 그나마 새로운 환경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의 허점을 눈요기로 대체했다면 이번 3편에서는 그 눈요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애써 감춘 허점들을 바로 보게 되는 작품이었다.
부재가 '불과 재'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바랑은 어느 순간 빌런이기보다는 쿼리치대령의 주변인으로 전략해 버린다. 본인 자신이 불이라며 강렬하게 등장했던 것과는 달리 후반에 갈수록 그저 쿼리치대령의 옆자리에 서성거릴 뿐이다. 2편까지만 해도 캐릭터성이 뚜렷했던 쿼리치대령은 3편에서 그의 친아들 스파이더를 구하는 과정에서 제이크와 애매하고도 뻘쭘한 협력을 통해 그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영화의 흐름상 그는 아바타에 동화되는 듯 보였지만 '제이크를 사살한다'는 목적에 당위성을 잃어버려 이도저도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더불어 누구보다도 활동적이었던 제이크의 위기, 감금, 탈출과정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1편에서 그를 상징했던 강점들이 모두 휘발된 것처럼 보였다. 아바타 시리즈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기대한 탓일까. N차 관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던 이유는 1편에서 보였던 간결한 서사와 메시지가 주는 힘이 그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 아바타시리즈는 영화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현시대에서 살릴 수 있는 모든 최상위 기술이 응집된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범람하는 OTT시대에 혹자는 아바타시리즈야말로 영화관의 존재 이유라고도 말한다.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반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CG 속 세상이 아닌 영화는 영화관에서의 상영의미가 없는 것인가? 결국 극장에서 살아남는 영화는 스크린 속 인물들과 내가 동화되는 순간을 선사하고 마는 작품이라 나는 믿는다. 좁은 태블릿화면으로는 결코 체감할 수 없는 영화적 경험은 CG 속 이야기의 힘이라 믿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애정을 기반한 감상이기에 어쩌면 실망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