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괴물은 탄생되는가, 형성되는가

by 사서 유

많은 이들이 괴물의 이름을 창조자의 이름으로 헷갈려하는 이 작품은 메리 셸리가 고작 19살에 쓴 SF소설이다. SF소설의 효시라고 일컫어지는 이 책은 유명하면서도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아는 사람보다는 적을 것이다. 특히 90년 대생들에게 애니메이션 <두치와 뿌꾸>에서 '몬스'라는 이름의 조금은 어리숙한 녹색괴물이 더욱 익숙할 것이다. 이 몬스에 대해서도 대부분 '프랑켄슈타인'으로 설명되는 것을 보면 원작도서를 읽지 않은 이들은 오해하기 쉬울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박사가 갈바니즘을 바탕으로 시체들을 이어 붙여 괴물을 탄생시키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괴물은 작중 뚜렷한 이름 없이 악마 내지는 괴물로 불리는데, 그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괴물로 태어나게 한 창조주와, 자신의 생김새로 적의를 품는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며 잇따른 살인으로 빅터를 옥죄인다. 다소 친근한 이미지 었던 녹색괴물 프랑켄슈타인에 비하면 원작은 공포와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이 만든 괴생물체가 거리를 활보하고 주변인들을 살해하면서 빅터는 불안과 공포에 잠식되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다. 주인공 빅터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을 독자에게 그대로 선사하기에 불안증세를 느끼던 과거의 경험이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창조주를 끊임없이 증오하면서 고독을 느끼는 괴물의 모습은 흡사 자신이 원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라 태어난 자식들이 부모를 원망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다. 배척감에 증오를 느끼고 자신과 같은 반려자를 원하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몹시 인간적이다.


자신의 창조주를 서서히 파괴시키는 과정에 괴로움을 느끼는 괴물의 인간성은 그가 온전한 괴물이 아님을 시사한다. 태어났을 뿐인데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괴물의 행적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가 측은하게도 느껴진다. 괴물이 대화가 가능하고 모든 정서를 느끼는 고지능의 생명체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가 조금은 처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가 괴물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인간의 공포심이 그를 진정한 괴물로 만든 것인지에 대해 생각 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의 문학적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종종 고전소설들은 읽기 어렵다는 편견에 쉽게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고전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이라면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프랑켄슈타인> 중 구미가 당기는 책부터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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