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를 두 번 보다가
원하지 않았던 결정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느닷없이 다가왔을 때 <만약에 우리>를 보게 되었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애써 머릿속 생각을 몰아내려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가며 시간을 채우자는 생각으로 영화리뷰를 올리기 위해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어떠한 정보나 기대가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볼만한 영화가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 선택한 영화였다. 결국 러닝타임 내내 흐르는 눈물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엔딩크레딧이 오른 뒤에도 남은 감정을 털어내듯이 눈 주위를 닦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대한 글이 씨네랩(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메인화면에 오랫동안 오르게 되었다.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인과관계라고 믿으며 나를 위로했다.
작년에 예비신부가 된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던 날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두 번이나 볼 때에는 처음 볼 때처럼 울지 않으리라 생각했기에 호기롭게 친구와 함께 상영관에 들어갔다. 어리석게도 내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처음에 보았을 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했다. 극 중 정원의 미묘한 표정변화와 예견되어 있던 두 사람의 결정, 그리고 시작과 끝을 비슷하게 맺은 영화의 사소한 디테일들까지. 버스에 앉아 음악 대신 주변소음을 대신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영화는, 그러니까 내가 정말 좋아하게 되는 영화들은 보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내가 처한 상황과 영화의 메시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때, 마치 영화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듯이 나를 위로했다. 어떤 한 장면으로 혹은 어느 대사로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건넸고, 그런 영화를 보고 나오면 몇 번씩이나 다시 그 영화를 보더라도 다르게 다가온다. 마음을 여러 번 다쳐보면 다친 내 마음을 직면하고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슬프게도 알아간다. 배우고 싶지 않았던 것들에 익숙해져 있는 내가 싫을 때마다, 나를 위로하던 영화들을 꺼내본다. <라라랜드>의 미아처럼, <만약에 우리>의 정원처럼, 시간이 지나 결국 미소 짓는 그 들의 과거가 지금의 나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