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머시: 90분> 서치의 장점과 대홍수의 단점

by 사서 유

정확성과 분석에 기반한 일자리들이 AI로 대체될 것이란 주장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창작과 예술분야에서도 AI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철저한 DB기반으로 오점 없는 일처리가 필요한 직업들이 침범당하지 않을 리없다는 우려이다. 영화 <노 머시: 90분>은 AI판사가 재판하는 머시제도를 통하여 범죄율이 약 70%가량이나 떨어진 가상의 LA를 배경으로 그린다. 그러나 AI가 판사라는 이 참신한 발상 앞에서 영화는 다소 길을 잃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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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레이븐은 자신이 설계한 AI 사법시스템에서 90분 동안 스스로를 변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영화 <노 머시: 90분>은 실제로 영화의 러닝타임과 극의 시간이 동일하게 흘러간다. 과거로의 회상이라던가 미래로의 점핑도 없이 오로지 90분을 레이븐이 사형의자에 앉아서 자신을 변론하는데 쓰인다. 영화 <노 머시: 90분>은 주인공이 온종일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긴박하고 촉박한 상황을 잘 연출해 낸다. 그리고 이는 영화 <서치>의 장점을 적절하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AI판사 매독스가 펼쳐놓는 사건파일이라던지 화면들은 아이폰의 UI를 떠오르게 하고, 레이븐은 형사인 본인의 직업적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머리를 굴린다. 화면 오른쪽에 내내 등장하는 90분이란 제한시간과 유죄율, 주인공을 당장이라도 사형시킬 수 있는 의자는 폐쇄적이지만 역동적인 공포감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노 머시: 90분>은 'AI가 판사라면?'이라는 참신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이 발상을 제대로 요리해내지는 못한다. 극 중 등장하는 AI판사인 매독스는 일정 부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본인에겐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감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때로 레이븐을 돕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형선고를 받기 전 90분 동안 충분히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다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레이븐의 말 한마디에 곧이곧대로 움직이는 경찰인력도 조금은 억지스럽다. <서치>가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정보의 홍수 속을 헤짚어가며 간신히 진실에 닿는 데에 반해 레이븐은 극 중에서 신처럼 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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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AI판사인 매독스의 애매한 설정은 이 역을 맡은 배우 레베카 퍼거슨의 연기력으로 커버될 뿐이다. 기계 같으면서도 때로는 허를 찌르는 것 같은 AI의 그 속을 알 수 없는 연기를 배우가 잘 소화해 내주었지만 이는 구멍 난 극본을 매울 방편일 뿐이다. <써치>의 장점을 무엇보다 잘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생각 없이 볼 장르영화라는 점에서는 평작인 것은 분명하다만 참신한 발상을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대체할 수는 없다는 한 가지 주장을 영화 안에서 좀 더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평작보다는 수작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인공지능에 대한 발상은 참신했으나, 이를 그려내는 방법은 구시대적이라는 것에서 국내 공개작 <대홍수>가 떠오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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