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와 감내의 가운데에서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를 보고서

by 사서 유

일본의 렌탈문화는 비단 물건뿐만이 아니다. 현실살이가 어려운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렌탈 아저씨, 연애상대를 대행해 주는 애인 등 렌탈의 범위는 인간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 그 자체로 보인다.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이하 렌탈 패밀리)는 이러한 일본의 독특한 공유경제에 모티브를 얻어 말 그대로 가족을 렌탈하는 일을 하게 된 이방인의 이야기를 그렸다. 미이라시리즈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브렌든 프레이저가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이질적인 이방인 필립으로 분한다. 가족을 빌린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이 발상에서 진심이 허용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영화 <렌탈 패밀리>는 공유될 수 있는 감정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감정의 선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말한다.

영화 <렌탈 패밀리>는 일본에서 7년째 거주 중인 무명배우 필립(브렌든 프레이저)이 렌탈 패밀리 회사를 통해서 누군가의 가족, 친구, 연인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동성애인을 숨기기 위해 가짜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고객의 상황을 미국인인 그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부모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냐는 그의 질문을 들은 일본인 아이코는 결코 우리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말한다. 그의 질문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 보이지만 실은 타인의 시선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동양문화에 정곡을 찌른다. 가슴 아픈 진실보다는 선의의 거짓말이 더욱 낫다는 기조는 그가 속한 회사의 신념이자, 그가 사는 나라의 문화이다.


그는 고용인의 관계에서 선을 지키길 바라는 회사와 의뢰인들과는 다르게 진심을 섞는다. 어떤 딸은 노배우인 아버지의 활기를 되찾아주기 위하여 신문기자가 되기를 바라고, 어떤 엄마는 아이의 사립학교 입학을 위해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대에게 선의라 할지어도 진실 대신 거짓을 택한 의뢰인들이고, 무엇보다 서비스의 실제 사용인들은 본인들의 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돈을 지불한 고용인은 알 수 없는 유대관계가 쌓여가던 필립은 어느덧 그들의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이 된다. 노배우의 마지막 부탁을 함께 들어주고 소녀의 아버지가 되면서 필립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용기를 얻는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마주하는 아이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찾고 떠난 노배우를 보며 개인이 안고 가야만 하는 상처와 고독에 대해 말한다. 타인에게서 상처를 치유받는 것이 아닌, 내가 내 상처를 보듬고 직면하여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받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나눌 수 있는 감정으로 치유받고 홀로 감내해야만 하는 감정으로 나아가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며 어디까지 치유받고 어디까지 치유해야 하는지를 짐짓 고민하게 된다. 결국 닫힌 문을 열고 나아가는 것은 뼈아픈 진실도, 선의의 거짓도 아닌 진심어린 공감은 아닐까. 대리사죄 서비스에 대한 아이코의 생각이 변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 극 중 필립은 마치 소인국에 살고 있는 걸리버처럼 일본의 작고 아기자기한 공간과 몹시 이질적이다.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타인의 정서도 인간의 보편적 감정 앞에서는 그저 하나의 다름일 뿐이다. 모두와 함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혼자인 것 같은 그 감정을 일본에 사는 미국인이라는 특징 하나로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따뜻한 시선은 어느 설정면에서는 다소 낙관적이란 생각이 든다. 필립과 정서를 나누는 매춘부 롤라의 설정은 영화의 몰입감을 방해한다. 성을 사고파는 것에 합리화를 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감독은 왜 같은 여성으로서 알지 못한 것일까. 롤라는 꼭 매춘부여야 했을까.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필립과 성매수자라는 이 설정에서 오는 괴리감은 영화의 감동을 급격히 반감시킨다. 어쩌면 이는 끝끝내 나와 일본문화 사이에서 결코 타협될 수 없는 지점일지도 모른다. 만약 이 지점이 예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이라면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의 감동은 온전히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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