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감독의 신작 <휴민트>가 개봉 전 기대와는 달리 손익분기점인 400만 명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감독과 배우 모두 흥행보증수표나 다를 바 없던 영화의 부진은 지금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방향과도 같다. 관객은 참신하거나 그렇지 못할 거라면 장르적 문법을 톡톡히 따르되 예고편에서 얻는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키느냐에 따라 영화표를 지불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영화 <휴민트>의 부진사유는 후자에 가깝다.
영화 <휴민트>는 액션시퀀스가 부분 부분 들어간 멜로영화에 가깝다. 나쁘게 말하면 배우들의 영상화보집, 혹은 90년대 뮤직비디오와 비슷하고 좋게 말하면 홍콩영화의 색이 짙은 멜로액션물이다. 앞서 극악의 평을 한 이유는 서사와 동기에 있다. 국정원 조과장(조인성)은 정보원이 죽은 후 이 같은 일을 막고자 냉정하게 말하면 남한과는 큰 관련이 없는 오로지 '구출'을 위한 첩보작전을 벌인다. 반대로 박건(박정민)은 헤어진 연인이 러시아 마피아에게 팔릴 위기에 처하자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생사를 다툰다. 박건의 동기는 이해가 되지만 조과장의 동기는 국가의 안보와 목숨을 걸기엔 다소 약하다. 어찌 되었던 그는 과장이란 직책까지 올라간 국정원이 아닌가. 심지어 극 중 박건은 자신의 옛 애인을 위해 목숨마저 거는 조과장에게 왜 이렇게 까지 하냐고 묻는다. 그때 조과장의 대답은 류승완감독의 작품을 즐겨보았던 이들에게 여럿 실망감 안겼을 것이다.
더불어 극 중 인신매매과정에서 여성들이 화장을 한 채 청순미를 강조한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방탄유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미장센보다는 영상화보집을 떠오르게 한다. 정보원을 살리기 위해 박건과 협조하는 것이 아닌, 본인이 직접 러시아 마피아 속에 들어가 일망타진하는 그 동기가 오로지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모든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다. 류승완감독은 롱코트를 차려입은 조인성이 아리따운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거는 그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감독의 동기가 인물의 동기보다 앞서 벌어진 일이다.
이 영화가 차리리 홍콩영화에 대한 헌신처럼 오마주를 잔뜩 넣어 관객으로 하여금 장면의 출처를 찾아보게 했다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혹은 조인성의 외적쓰임을 잠시 내려놓고 국정원이 자신의 위치 안에서 최대한 박건을 협조하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실 후자의 이유라면 조인성이 굳이 조과장일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북한 정보원인 신세경에게 조인성은 4개월 동안 지켜보았다는 이유로 합당한 의문을 제기하는 부하직원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 모든 인물들의 동기가 오로지 외적요소가 아니면 크게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관람객들이 '90년대 뮤직비디오'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영화가 이토록 부진을 겪을 정도로 못 만든 영화라 묻는다면 마음 편히 동감할 순 없다. 평이한 줄거리이기 때문에 극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류승완감독의 장기대로 액션신들은 그야말로 흠잡을 곳 없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의 제목이 '사람을 통한 정보수집'을 의미하는 휴민트라는 점에서 정보를 통한 첩보활동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만족감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휴민트는 사실 캐릭터의 닉네임처럼 하나의 구실일 뿐 중요한 것은 그 정보원이 미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