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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06. 2020

어느덧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끝나고

9일간의 짧은 미국 여행을 뒤로하며

9일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만을 기다리던 때. 이모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얼굴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던 누군가에게 장문의 편지와도 같은 메시지를 보내며 나눈물이 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내가 보낸 메시지 다시 곱씹어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출근을 하고 다음날 다시 출근 준비를 하며 나는 종종 먹먹했다. 왜 울음이 터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던 누군가와의 대화가 그리워질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맞이한 나의 일상에서의 공허함 때문인지. 그리운 것이 한때나마 이민을 준비했던 나의 지난 시간이었는지, 포기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의 그 서글픈 감정이 도로 되살아나서였는지, 또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어떠한 미련에서였는지.


한국으로 돌아와 나를 맞이한 것은 온통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이었다. 정답게 맞이하는 가족들, 나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나의 작은방, 그리고 애정 어린 나의 도서관. 곧바로 다음날 출근을 하며 읽지 못한 책들을 읽고, 잠시 놀러 온 학생과 대화하며 바쁘지 않은 기간엔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직업에 대해 잠시나마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서는 어딘지 모를 공허함과 답답함이 있었고  때때로 그 먹먹한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이유와 원인 모를 복잡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른 채 그저 며칠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흐르고, 어릴 때부터 가고 싶었던 해외 인턴십에 대하여 찾아보며 두 달 후면 교육대학원 입시 기간임을 깨닫자 문득 그저 지금 나는 내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률도 희박한 해외인턴십이지만 처음 이 직업을 선택한 뒤로 줄곧 꿈꾸었던 것에 대한 미련을 준비하는 것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사학위를 받으며 준비하는 기간만 3년이 걸릴 터였고 학교도서관의 경력과 변변치 않은 학벌을 가진 나로서는 붙을 확률이 가히 0%에 가까웠다. 인턴십에서 원하는 것은 교육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의 석사학위임을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고, 지금의 나의 상황에서는 교원자격증도 함께 취득할 수 있는 교육대학원만이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저 당장의 현실에 내 삶을 맞추고 싶지 않았고, 비록 교육대학원일지라도 가고 싶던 대학원에 입학한다면 조금 더 나의 삶이 만족스러워지지 않을까, 혹시 그 안에서의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지 않은 학점과 전문대라는 학벌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비록 대학원일지라도 원하는 곳에 입학하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느껴지지만. 그렇게 나는 주말에 당장 토익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으로, 스스로를 북돋을 뿐이었다.


미국에서 근처 공공도서관을 찾아가다 홀로 길을 잃어 주택가 안에 들어섰을  때, 복잡 미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복잡한 다운타운에서 벗어나 스무 살에 경험했던 이 동네의 날씨는 여전히 포근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막연한 나의 동경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한국에서도 여유롭고 한적한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시드니의 그 여유로움이 그리웠고 이곳을 다시 경험해보니 어쩌면 내가 시드니를 사랑했던 이유는 바로 이곳과 비슷해서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이 도시는 첫사랑과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곳이 나를 호주로 가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아이러니하게도 뒤이어 든 생각은,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이 그리워서가 아닌, 이제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는 이 속에 섞일 수 없는 머물다가는 사람이라는 깨달음과, 나의 현실은 다른 공간에 엄연히 자라 잡고 있다는 사실이 느끼게 하는 별 수 없는 무력함과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 나의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는 다짐들. 어쩌면 스무 살에 나에게 찾아왔던 기회를 내가 놓치지 않았다면 지금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하는 무의미한 만약에와 더불어.


영화 라라랜드를 좋아했던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살다 다시 그 꿈 안에서 살아간다. 비록 그 과정에서 그들이 놓친 것은 사랑이었겠지만 이 영화가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미아가 결국엔 자신의 꿈을 쫓아 세계적인 배우가 되고, 셉은 그가 운영하고 싶던 작은 재즈 바를 운영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지막 미소엔 어떠한 미련과 허전함이 남듯이.


허지웅 작가는 영화 <라라랜드>의 리뷰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 아무 의미 없는 상상은 관객을 무너뜨린다. 우리 모두가 그런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잔인무도함을 이기기 위해 만약에,라고 만 번쯤 상상해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매번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아름답고 아련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랬다면 우리는 행복했을까. 그럴 리 없다는 자괴감과 행복을 빌어주는 선의가 섞여 한숨이 나온다. 그 한숨의 힘을 빌려 사람들은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듯 하루를 살아간다. 라이언 고슬링의 마지막 모습처럼 말이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고 다시 건반을 치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말처럼 극 중 셉은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고 다시 건반을 친다. 나 역시 그처럼 그저 숨을 고르고 다시 건반을 치는 일밖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어쩌면 나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현실이 받쳐줘야 의지가 생긴다는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떠나질 않았지만 괜스레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그 시간들은 그저 나 혼자만의 감정 소모가 아니었을 것이란 위로. 9년 전의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와 이곳에 잠시나마 살았던 스무 살의 나도, 언젠가는 외국에서 사서로 일할 것이라는 헛된 꿈과 기대를 품으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기대하고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났던 몇 년 전의 나도, 매 순간마다 내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했던 나와, 9년 만에 다시 찾은 이 도시에서 이룰 수 없던 것들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품고서, 나는 그저 머물다가는 사람임을 실감했던 지금의 나까지. 그저 나의 모든 선택과 지난 감정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최선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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