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에서 Hollywood Murals을 보고오다
영화를 퍽 좋아하면서도 헐리우드에 특출난 관심이 없던 내가 고된 몸을 이끌고 헐리우드로 향한 것은 순전히 영화 <라라랜드>에 등장한 벽화 때문이었다. 헐리우드의 유명인사들을 그려놓은 벽화를 지나 무엇에 홀린 듯 펍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간 미아와, 징글벨이나 쳐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피아노를 연주하던 셉. 그날 유독 파란 미아의 드레스와 어둠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빨간 불빛, 그리고 그것마저 하나의 일부와도 같았던 거대한 벽화. 거금을 들여 LA를 여행하면서 의무적으로 들려야 했던 여행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에 보다 특별한 기대감이 있던 것은 순전히 그 한 장면 때문이었다.
스모크 하우스 레스토랑에서 리프트를 불러 헐리우드를 향하는 길에 어찌나 졸음이 쏟아지던지, 이미 잔뜩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의 열기가 먼저 반겼다. 마치 강남 한복판에서 내린듯한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 한가운데. 도로 모퉁이에 내려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발밑에 어떤 스타의 손자국이 찍힌지도 모른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향해갔다. 나는 헐리우드&하이랜드를 구경하며 멀리서나마 헐리우드 사인을 찍은 뒤 해가 지기 전에 벽화 쪽으로 이동해볼 생각이었기에, 복잡한 인파 속을 뚫고 쇼핑센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헐리우드 & 하이랜드는 돌비극장과 TCL 차이니즈 극장을 포함한 대형 쇼핑몰로, 저렴한 주차비용과 헐리우드 사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헐리우드의 중심 관광지구이다. 하이랜드 안으로 입성하자 한창 상영 중이었던 버즈 오브 프레이의 홍보부스가 눈에 들어왔고, 친구와 함께였다면 도전해볼법한 흥미로운 이벤트가 많았지만 그럴만한 배짱은 없던 나는 그저 그 주변을 알짱대며 구경하였다. 광장 중심에서 한바퀴 돌며 영상을 찍어보니 낯익은 브랜드들이 꽤 눈에 들어왔고 복잡한 쇼핑몰에 둘러싸인 기분마저 들었다. 다소 음침하게 생긴 버즈 오브 프레이의 사인물들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원통 같은 쇼핑몰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1층과는 다르게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는 꽤나 한산하였고, 시야를 멀리 내다보니 마치 헐리우드가 한눈에 들어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멀리서 간신히 보이는 헐리우드 사인을 조금 더 괜찮은 컨디션의 사진으로 담고자 궁리하다가, 최적의 장소를 찾아가 최대한 카메라 줌을 당겨 헐리우드 사인을 찍었다. 에어비앤비에서 이 사인에 오르는 코스들을 꽤나 보았는데,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헐리우드 사인을 굳이 올라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조금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을지 고민하며 몇 장을 더 찍어보았지만 워낙 멀리서 콩알만큼 보이는지라 이 이상의 사진을 건져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눈으로 보는 것에 만족하곤 내려와 중간에 차이니즈 씨어터를 찾아보려 헤매다 이윽고 다 포기하고는 1층으로 내려와 미국에 사시는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이모에게 지금 이 복잡한 헐리우드에서 혼자 길을 잃지 않고 열심히 구경 중이라는 것과, 내 영어실력이 그리 하수는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걱정마시라는 당부와 함께 통화를 끊었다. 이모는 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홀로 미국을 찾은 나를 매 순간 대견해하셨고 나는 그런 이모의 말들에 또 용기를 얻어 그렇게 남은 일정을 이어가곤 했다.
복잡한 하이랜드 쇼핑몰을 빠져나와 차이니즈 씨어터와 돌비극장 내부를 구경해볼 심산이었지만, 돌비 극장 문은 닫혀있었고 차이니즈 씨어터는 가는 길을 착각하여 복잡하고도 좁은 인도에서 역방향으로 걸어가 간신히 외부를 볼 수 있었다. 돌비 극장은 시간이 허락된다면 들러보고 싶은 관광지 중 하나였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내부는 구경할 수 없었고 한참을 더 서성이다 이내 포기하고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거리 바닥에는 헐리우드 스타들의 마크가 새겨져있었지만 워낙 사람들에 치여가며 걸었던 통에 좋아하는 연예인의 마크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심지어 그토록 좋아하던 영화 <라라랜드> 주연 배우들의 마크조차 놓쳤을 정도였달까.
헐리우드&하이랜드 몰 주변으로 대부분의 관광지들은 포진되어 있었고, 영화 라라랜드의 이름과 똑같은 라라랜드 상점 주변 역시 많은 사람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다소 조악한 기념품들 중에 건질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수확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닫고 벽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헐리우드에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엘 캐피탄 극장도 볼 수 있었는데, 그 옆에는 디즈니 스토어가 있어 그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밖을 나서자마자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어깨 위로 떨어져 내 코트에 얼룩을 낼 줄은 상상도 못한 채.
정신 사납던 번화가에서 벗어나 영화세트장같은 장소들을 지나 이윽고 헐리우드벽화에 도착하였다. 걸어가는 도중엔 해가 저물고 있어 건물들은 어느새 옅은 노란빛을 띄고 있었고, 바래진 벽화는 노래진 하늘색과 어울려 이곳이 영화촬영지였음을 실감케했다. 사실 헐리우드 벽화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정도로 다소 허름한 건물에 그려져 있었고 쉴 새 없이 차들이 지나다니는 통에 사진 한 장 제대로 건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차들이 없는 찰나에 사진을 찍고는 더 늦기 전에 비버리힐스로 돌아가려던 찰나, 왠 젊은 흑인 남성이 내가 들고 있던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쇼핑백을 보고는 말을 걸었다. 당시엔 경계심에 잔뜩 긴장하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묻는 말에 대답만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더 여유롭게 대화해볼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LA 한복판에서 낯선 남성이 말을 거는 그 상황이 당시에는 다소 무서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화 정도의 이벤트는 스스로 허용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소소한 아쉬움이랄까.
당시 이 그림을 그린 아마추어 화가는, 헐리웃스타들이 스타인 나를 바라보는 설정으로 이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극중 미아는 번번이 오디션에 떨어지고 마는 배우지망생이었으며 화려한 군중 사이에서 어딘지 모를 공허함과 고독함에 파티를 빠져나와 셉의 연주소리에 이끌려 낯선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헐리웃스타들이 나를 바라본다는 설정과 당시 주인공들의 상황, 그리고 벽화 끝에 새어 나오는 새빨간 불빛까지. 감독이 얼마나 이 영화를 세세히 공들여 만들었는지를 이 벽화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헐리우드 구석에서 스타인 나를 상상하며 거대한 벽화를 그렸을 아마추어 화가의 마음도, 극중 미아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 영화를 찍기까지 수없이 좌절했을 감독과 주연을 맡기까지 오래 걸렸을 배우들의 서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는 내 책을 꿈꾸며 더디고 느린 속도이지만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까지. 결국 자신의 그림을 유명하게 만든 화가처럼, 데뷔 때부터 만들고 싶던 영화를 만들어 꿈을 이룬 감독처럼 그들의 비해 더욱 더디고 소박할지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