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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08. 2020

<아이 필 프리티> 어여쁜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나를 사랑해

조금은 애석한 고백일지도 모르다만, 나는 어릴 때부터 줄곧 '외모 놀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주변 친구들의 놀림이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애정이 녹아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도 매 순간 놀림당하던 그 순간에서 상처에 자유롭지 않을 리 만무했다. 쌍꺼풀 없고 눈두덩에 살이 많던 내 눈과 체구에 비해 넓은 어깨, 이유는 모르겠으나 손보다도 더 노랗던 나의 맨얼굴.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공부에 열중하느라 체력을 관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 오른 내 모습이 싫어 무리하게 급식을 조절하는 일까지 벌였다. 20대 초반에 쌍꺼풀 수술을 하고, 커가며 이쁘다는 칭찬을 여러 번 들어보며 어린 시절 나를 옥죄여온 외모 콤플렉스에서 꽤 자유로워졌지만, 문득문득 사소한 지적들을 받을 때마다 어릴 때의 내가 돌연 튀어나온다. 수십 번 거울을 보며, 내가 그렇게 못생긴 걸까를 고민하던 그 아이가.

주인공 '르네'는 소위 옷 잘 입는 언니로 불려도 무색할만한 뛰어난 패션 감각을 지녔지만, 통통한 자신의 몸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떡해서든 다이어트에 성공하고자 피트니스센터를 등록하여 스피닝에 매진하던 그녀는 그만 불의의 사고로 사이클 안장이 무너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한동안 기절 상태에서 일어난 그녀는, 우연히 거울을 보고 자신이 꿈에 그리던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으로 변했음을 알아챈다. 그렇게 외모 변화로 얻은 자신감으로 모델 같은 여성들만 일할 수 있었던 사내 리셉션에도 지원해보며 괜찮은 남자들과의 로맨스를 이룬다. 사실 변한 것은 그녀의 다친 머리일 뿐, 그녀가 맘에 들어 하지 않던 자신의 통통한 몸매는 그대로인 것도 모른 채.


영화 <아이 필 프리티>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에이미 슈머가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사실 간단하다. 외모 자신감이 없던 평범한 여자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이 이뻐졌다고 착각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 그 끝에 관객에게 전달하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조금은 상투적일지도 모를 영화의 메시지. 이렇듯 단순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가 뭍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영화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의 뚜렷한 방향성이다. <아이 비컴 프리티>가 아닌 <아이 필 프리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예뻐진 주인공'이 아닌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의 시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 속에서 어쩌면 불쾌할지도 모를 뚱뚱한 사람들을 향한 외모 지적이라든지, 외모지상주의를 권장하는 내용은 이 세상에 마치 존재하지 않은 이슈들처럼 영리하게 감춘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조연들이 가진 각각의 서사를 통하여,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비단 외모에 국한되어 있지 않음을 말한다. 남자는 이래야해라는 맨박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르네의 남자친구, 유명 패션회사를 이끌고 있는 CEO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족한 능력과 특이한 목소리로 자신감이 없는 르네의 직장 상사. 아름답고 모델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자존감을 잃은 헬스클럽 동기와, 평범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르네의 친구들까지. 각자가 갖고 있는 결핍과, 그 결핍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들을 통해 영화는 본인의 메시지를 더욱 뚜렷이 밝힌다. 그러니까 우리 영화의 메시지는 외모가 다가 아니라니까를 영리하게 스토리에 녹여낸다고나 할까.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주인공 르네가 그간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패션쇼 한가운데에서 관객들에게 연설하는 그 장면에서 사실 나는 조금 울어버렸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 받은 내 유년시절과 커가면서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지던 지난 시절들이 함께 안타까워서. 매일같이 습관처럼 재보던 체중계에서 며칠 동안은 자유로워져야겠다. 앞으로 나를 사랑할 일이 더 많이 남은 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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