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 유 Nov 08. 2020

<상견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

사랑이 어딨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

도저히 진부해서 더는 마음을 주지 않을 거라 다짐하는 소재들도, 극본과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합이 삼위일체를 이루면 어느새 그랬냐는 듯 홀린 듯 보게 될 때가 있다. 이제는 도플갱어라든지 타임슬립이란 소재는 좀 지겹지 않나라던 찰나 발견한 바로 이 드라마처럼. 대만드라마 특유의 과도한 개그신이라던지, 다소 촌스러운 극중 설정들은 이 드라마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더욱 가깝다고나 할까. 시공간을 초월하며 두 주인공이 끊임없이 동갑이었다가, 연상이었다가, 연하이었다가를 반복하는 이 드라마를 홀린 듯 정주행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를 들으며 흥얼거리게 된다. 내 인생에서 이토록 사랑에 미친 누군가가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사랑하는 연인 왕취완성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힘겨워하던 황위시안은 익명의 카스트 플레이어와 테이프 하나를 배송받는다.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를 듣던 와중, 우연히 과거로 돌아가게 된 황위시안.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의 연인과 똑같이 생긴 리쯔웨이를 만난다. 그곳에서 천원루라는 이름의 여고생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던 중,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녀. 과거로 간 기억이 단순히 꿈이 아님을 직감한 그녀는, 자신의 애인을 다시 만나기 위해 타임슬립을 시도한다. 2년 동안 미치도록 그리워한 왕취완성을 어쩌면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대만드라마 <상견니>는 이미 웹상에서 상친넘이라는 페인 용어를 만들 만큼 유명하다. 스릴러와 로맨스가 적절히 조합된다가, 극의 흐름을 깨는 개그신 또한 크게 보이지 않는다. 지나간 떡밥들을 회수하는 극의 흡입력과 1인 2역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극중 배우들의 연기합은 드라마 몰입에 더욱 힘을 더한다. 극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바이의 라스트 댄스는 지겨울 법도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 찾아듣게 될 정도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좋은 극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 거라고. 우리가 모두 그려온 판타지가 이 드라마에 모두 녹여있음이라고. 그러니까 그 판타지는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을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바쳐 기다린 남자라든지, 그 남자를 위하여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를 미래를 감수하며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는 여자라든지. 세상에 철저히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에 열렬히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라던지. 기타 등등. 그 옛날 설화로만 들어왔던 인연의 붉은 실이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믿게 만드는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연애보다 사랑을 원하는 모든 이들을 절절히 울렸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열린 결말인지, 새드엔딩인지, 해피엔딩인지조차 모를 모호한 드라마의 결말에도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재회를 그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클로저>에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 묻던 사랑이 어딨냐는 그 질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저들만은 알고 있기를 바라며. 그런 사랑 따위는 내 인생에 등장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종종 기대하고 마는 그런 일상들을 위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 필 프리티> 어여쁜 우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