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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21. 2020

<클로저> 결국 우린 모두 낯선 사람

서서히 식어가다못해 상해버린 사랑에 관하여

어떤 연애의 종말은 낯선 사람과 만나 다시 낯선 이들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오만이 비로소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이었다는 것을 종국에 깨닫고 만다. 영화 <클로저> 속 사랑은, 어쩌면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것이 아닌 나약하고도 보잘것없는 허무함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에서의 파괴적이고 이기적이며,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애잔했던 사랑처럼.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보인 바닥에 나뒹구는 사랑의 형태처럼. 우리는 모두에게 결국엔 낯선 사람들이므로.

부고란을 쓰는 기자이자 동시에 소설가 지망생인 댄은, 우연한 사고로 뉴욕에서 온 앨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뮤즈로 내세워 출간하게 된 그는 자신의 책 표지를 담당하는 사진작가 안나를 만나 또 다시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서 애인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안나는 그를 애써 밀어내려 하지만 그녀는 댄과의 만남을 끊을 수 없다. 댄의 치기 어린 찌질함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의사 남자친구 래리와의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한 채로.


영화 <클로저>를 본 누군가가 말했다. 인류애를 잃어가는 시점에 보면 나머지 남은 인류애마저 사라져버리는 영화라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장진영과 김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클로저>는 참으로 많이 닮았다. 스트리퍼인 앨리스와 술집 여자였던 연아의 미련하리만큼 한 방향이었던 사랑과 감정적 갑의 입장에서 그녀들의 마음을 줄곧 바닥에 나뒹굴게 했던 댄과 영훈. 잔인하리만큼 차가웠던 영화의 온도와 사랑을 바라보는 그 처연한 시선까지. 이 두 영화를 모두 감명 깊게 본 나로서는 도무지 인류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인 것일까. 비약일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연애 혹은 사랑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다시 뜨거워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굳이 나누어보자면 <클로저>는 서서히 식어가다 못해 상해버린  사랑이라면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뜨겁다 못해 쉬어버린 사랑이랄까.


사랑한다는 거짓말. 사랑을 숨기려는 거짓말. 사랑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거짓말. 사랑하지 않기에 할 수밖에 없는 거짓말. 문득 한 책에서 읽었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배낭여행을 가는 이유는 낯선 사람에게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연락처도 모르고 유지해야 할 관계도 없는 낯선 사람에게선, 나도 모르게 내 속 이야기를 툭 터놓고 하게 된다던 그 말. 영화 <클로저>는 이처럼 낯설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게 솔직할 수 없었던 이들이 보이는 어리석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결국 서로를 영영 낯선 사람들로 만들고 마는지도 모르고.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사랑을 애써 존재하는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확신할 수도 없는 사랑에 다시 속는 실수를 반복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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