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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01. 2020

<멜로가 체질> 모든 어른애들에게

또는 먹고 싶어 먹은 나이도 아닌데 나잇값마저 해야 하는 우리들을 위해

내년이면 서른이다. 빠른이라는 기묘하고도 독특한 제도 아래에서 실제 나이는 29살이라며 우겨보고는 있지만, 친구들이 '이제 너도 서른이야'라고 한다면 반박할 수 없다. 애써 2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는 있지만, 30대를 겸허히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모두 서른에 진입한지라, 실제 나이는 20대에 머물러있다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빠른년생이 맞이한 29살이란 그저 서류상에 존재하는, 아직은 20대라 우겨볼 수 있는 그런 대외적인 나이인 것이다. 무엇보다 서른이 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미성숙한 인간임을 인지하는 순간은 매번 찾아온다. 문득 '나는 그저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어른이라고 말해요.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 아닌 것 같은데'라던, 39살인 직장 선배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렇다. 나는 이 자리에서 그저 나이만 먹었는데 주위에서는 '이제 너도 어른이야'라며 어른 행세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2가지뿐이다. 10년 후의 나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으리라는 것, 10년 후에도 나는 지금처럼 '그래서 어른이 무엇인데'라는 말에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어른애가 되어있을 것이란 사실.

<극한직업>으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감독의 전작이 무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1%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운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꽤나 좋아하고 한때는 드라마를 쓰겠다며 공부했던 나조차도 그 많은 호평을 듣고 나서야 겨우 기웃거렸으니. 사실 <멜로가 체질>의 시청률이 고작 1%를 넘기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20-30대를 겨냥한데다가, 그 연령층 안에서도 서른과 거리가 먼 나이대는 존재했다. 더군다나 이들은 TV보다는 스트리밍이 더욱 익숙한 세대였으며,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다음 화를 보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긴박한 속도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다음주에는 누가 죽거나 혹은 죽일 것인가 등에 이야기와는 전혀 동떨어진 '생활 밀착형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령층을 포섭해야 하는 브라운관의 생리와 타겟 연령층의 소비 방법은, 이 드라마가 시청률로서는 쪽박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좁은 타겟층은 이 드라마를 알아보고 추천하기에 이르렀으며 입소문이 타 결국 종영 1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넷플릭스에서는 여전히 상위랭크권에 자리 잡고 있다. 소위 말하는 마니아층이 생성된 것이다. 아마 이 드라마에 공감하지 않을 서른 즈음의 나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과연 단언하다.


<극한직업>으로 이미 증명된 감독의 특유의 입담과 제4의 벽을 넘나들며 기존 드라마판을 깨부수는 독특한 연출과 PPL. 그리고 소수자들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결코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 공평한 시선까지. 소위 말한 탑급 배우들이 채우지 않았던 자리기에 더욱 빛날 수 있었던 배우들의 호연과, 종종 등장하던 따뜻한 대사들까지.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은 20대 초반까진 먼 이야기이자 30대 후반부터는 이미 지나온 이야기라는 정도가 되겠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대를 지나온 사람 역시 편견을 깨고 이 드라마를 본다면 종종 등장하는 조연들의 이야기만으로도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극 중 한주가 자신의 회사대표와 드라마 계약이 엎어진 후 술 한 잔을 나누던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위스키를 드셨어요?"


"가끔. 쓰디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걸 느끼고 싶을 때가 있어.

그걸 견디고 나면, 내가 조금 강한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

그게 되려 약해 보이나?"


"아니요.

대표님 처음 뵀을 때, 좀 무서웠지만 강해 보였어요.

아이 낳고 의무처럼 읊조리던 말이 강해져야 해, 강해져야해였는데 무작정 대표님을 보니까 무작정 따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일을 배우면서, 무서움으로 느껴졌던 대표님의 정확함이 그 정확함이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구나 배웠죠.


전 참 운이 좋아요.

지금까지 흔들림 없는 대표님한테, 여전히 흔들림 없이 배우고 싶거든요.

그런 사수를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잖아요.


입사했을 때, 대표님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보다 3살 많으셨어요.

이제 저한테 3년 남았으니까 3년 후에 난 대표님처럼 이렇게 강하고 정확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 기대감만으로도 사실 저 너무 설레고 행복.. (대표님를 바라보며) 괜찮으세요?"


"(울며) 나 안 정확해. 나 안 강해. 야, 임작가 뭐 좋아하냐.. 손감독 뭐 좋아해? 한우쏠까? 한우? (핸드폰을 보다 놀라며)"


"왜, 왜요?"


"(통곡하며) 한우가 너무 비싸"


"(안고 토닥이며) 미국산 해요.."



Episode 8 중에서


이 한 시퀀스를 가지고 글을 쓰고 싶을 만큼, 묘한 먹먹함이 몰려왔다. 그래, 세상에는 태어나면서부터 강한 사람은 없는 거겠지. 어릴 적 위문편지를 쓰던 군인 아저씨들이 사실은 어리디어린 군인 동생들이었으며,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한 20대 초반과는 다르게 실은 몸만 자랐다는 사실. 지금 나의 나이에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그 나이대 또한 사실은 어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과 어른으로서의 의젓함은 버티는 삶에 대한 자세일 뿐 누구도 이를 아득바득 갈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등. 나를 어른이라고 부르는 10대들은 전혀 알 수 없는, 어른이 사실은 되고 싶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어쩌면 '나 어른이야'하고 말하는 사람들 중 어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차디찬 현실.


누군가 저 장면에서 한주가 대표님을 안고 토닥이며 미국산으로 하자는 말이, 마치 '어른이면 굳이 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는 것과 같아 감동을 받았다며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을 보자 '아, 내가 이래서 이 장면을 좋아했구나'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직업 특성상 매번 어린아이들과 마주하며 생활한다. (그리고 이는 일반 회사에서 신입사원들 내지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직장 상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나는 '어른'보다도 다소 동떨어진 친근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종종 이래도 되는 것인가 싶은 의구심이 밀려온다. 그러니까 나 스스로 '어른처럼 보여야 해'라는 압박 아닌 압박이랄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래서 네가 어른이야?'라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며 대답할 순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던데, 그렇다면 아직 결혼할 남자도 없고 아이 생각도 없는 나는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이처럼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에세이와도 같다. 진주의 대사처럼 서른은, 어리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어른이라 말할 수도 없는 나이이므로. 이 애매한 나이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만 어른이 아닌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하나의 장편 에세이 같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는 법에 대해 골몰해야 한다. 진주의 말처럼 우리의 오늘은 앞으로 남은 날들 중 가장 젊으며, 살아온 날들 만큼 제일 노련해져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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