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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0. 2019

<라라랜드> 이토록 찬란한, 그토록 찬란했던 청춘

가슴 설레고, 뜨겁고, 부딪히다 이내 시들어간 그 시간들

영화 라라랜드는 지독히 찬란하고 아름다운 뮤지컬 영화이자, 청춘 영화이며, 로맨스 영화이다. 미아가 세바스찬을 만나기 전까지 시종 쏟아지는 뮤지컬 시퀀스는 순식간에 관객의 눈을 사로잡아 도무지 다른 곳으로 시선을 쏟을 수 없도록 만든다. 뮤지컬은 영화보다 디즈니가 더 익숙한 세대에서는 디즈니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2D 애니메이션들의 한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치 극의 서막이 오르기 전에 보이는 공연과도 같은 그 장면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시종 심장을 두들기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강력히 어필한다. '아, 그래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구나'하고.


영화의 분위기는 화려하게 막을 올렸던 오프닝과는 다르게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될수록 다소 가라앉는다. 미아와 셉(세바스찬)이 함께 하는 사계절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영화는 마치 그 계절을 대변하듯 극을 진행시킨다. 사계절 동안 그들의 연애는 마치 하나의 공동체인 것처럼 각자가 품은 꿈과 그 운명을 같이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봄에 만나 여름처럼 뜨거웠고 가을처럼 외로웠으며 겨울처럼 시들었다.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듯 꿈틀거리며 그들의 사랑과 꿈 또한 부활하기에 이른다.


흔히들 생각하는 재기 발랄한 청춘 로맨스 영화 속에선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사랑에 빠지며 그들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 서로를 사랑하고 마는 그 과정에 러닝타임 전부를 할애하곤 한다. 우연으로 시작한 그들의 만남은 외부에서 오는 어떤 물리적인 방해 요소로 인하여 감정의 골을 만들고, 서로가 만난 그 우연처럼 다시 서로에게 영원을 다짐하는 그 시나리오. 그 로맨스 영화를 생각한 관객들은 다소 실망했을 것이다. 아니, 좌절했을 것이다. 내가 원한 로맨스는 이게 아니라고. 그래, 내가 꿈꾼 사랑은 이게 아니라고. 심지어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결말을 향해 욕을 쏟아붓는 관객도 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이 영화는 디즈니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어공주 내지는 미녀와 야수 혹은 하이 스쿨 뮤지컬류의 재기 발랄한 영화가 아니다. 라라랜드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경험담이자, 무수히 시행착오를 겪었던 그 시절 너와 나의 이야기이며, 그때의 우리는 찬란했었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 이 영화는 정확히 말하자면 청춘이 말하는 청춘이 아닌, 청춘을 겪었던 이들이 말하는 회고록에 가깝다.


영화가 '그래서 결국 그들은 행복했습니다'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했었습니다'를 택한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청춘이라는 시간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전하기에 꿈꿀 수 있었고, 꿈꿀 수 있었기에 찬란했으며, 찬란했기에 애잔한 그들의 청춘. 권태에 매몰되고 현실에 타협됐을지라도 그 시절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사뭇 뭉클해지고 마는 그 시절들. 비록 서로가 끝까지 함께 웃을 순 없을지라도, 마지막은 서로에게 덤덤하게 미소 지을 수 있던 그 이유처럼. 그래, <라라랜드>는 이토록 찬란한, 그토록 찬란했던 청춘이었다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우주를 만들어갔다.

서로가 가장 필요한 그 시점에, 서로가 가장 빛났던 그 시절에, 서로를 알아본 그 순간에.
가슴 설레고, 뜨겁고, 부딪히다 이내 시들어간 그 시간들.
이윽고 그들의 우주가 소멸했을 때 그들은 알았다.


아, 그것은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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