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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17. 2019

<중독> 사랑에 중독된 남자, 그 익숙함에 중독된 여자

사랑에 중독된 이들에게 보이는 처연한 시선

연애 후 가장 큰 상실감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과 사랑하는 나를 잃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랑받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어떤 충만함과 따스함.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확실한 사실과, 그 사람에게서 받는 따스한 눈빛. 사랑스럽게 서로를 쳐다보는 연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온기와 안정감. 때로는 가족보다 더욱 내밀하고 친구보다 끈끈하게 느껴지곤 하는 관계성. 그런 것들이 한순간에 휘발되는 순간, 우리는 연애와 동시에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에 상심하며 때로는 분노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한순간에 사람을 낙원과 나락을 오가게 하는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한다 착각하며 나를 속이는 경험도 더러 존재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랑이 아닌, 중독이었음에도.


서로만이 전부인 형제 호진(이얼 분)과 대진(이병헌 분). 그리고 호진의 아내 은수(이미연 분). 그 누구보다 잉꼬부부인 호진과 은수, 그리고 그들의 동생이자 시동생인 대진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한 집에 살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카레이서인 대진과 그런 대진의 경기를 보러 간 호진은 불운의 사고를 겪게 되고, 둘은 같은 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그 후로 1년이 지난 어느 날,  누워있던 대진이 먼저 눈을 뜨게 되고 그의 형수인 은수와 함께 지내게 되지만  대진은 자신이 대진의 몸에 빙의된 호진이라 말하며 은수를 혼란에 빠트린다. 대진은 과연, 호진의 영혼이 빙의된 것일까. 그렇다면 은수와의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02년도에 개봉한 영화 <중독>은 줄거리만 놓고 보았을 때 꽤나 충격적인 내용에 속한다. 부적절한 관계에 놓인 형수와 시동생. 이토록 자극적이며 외설적이기까지 한 내용을 바탕으로 놓고 만든 이 영화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처연하기 그지없다. 마치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보고 난 이후의 씁쓸함을 맛보는 기분이랄까. 17년 전 영화임을 감안하고 보자면 이 영화의 연출은 촌스러운 데다 개연성 또한 매끄럽지 못하다. 극 중 대진(이병헌 분)을 짝사랑하는 그의 오랜 친구 예주(박선영 분)는 제3자의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가 호진임을 인정해버리며, 연애사를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시동생을 남편이라 믿는 은수(이미연 분) 역시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가랑비에 몸이 젖듯 서서히 스며드는 감정이 아닌, 극의 전개를 위한 급작스러운 변화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영화는 시종 대진이 호진임에게 빙의가 된 것이 아님을 암시하듯, 몇 가지 설정들을 관객들에게 던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극 중 대진의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장치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난 관객들에게는 이 영화의 주된 반전과 주제가 '동생 몸에 빙의한 형의 영혼'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영화 <중독>은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차용해 만든 삼류영화가 아님을 보인다.


결국엔  자신의 남편이 빙의됐다고 믿으며, 대진(이병헌 분)의 아이마저 임신해버린 은수. 그러나 예주에 의해 자신의 남편이 빙의한 것이 아닌 자신을 짝사랑하던 시동생 대진의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보통의 상식이라면(이미 이 영화의 앞선 내용이 보통의 영역에선 다소 멀어져있지만) 당장 시동생인 대진과의 관계를 끝내야 함이 맞지만, 그녀는 그저 모른 척 침묵을 택한다. 마치 헤어 나올 수 없이 이미 중독되어버린 마약중독자의 말로처럼, 그녀는 이미 사랑에  중독되어 버렸기에.


첫눈에 반해 형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끝내 놓지 못했던 대진과, 그런 그에게서 받는 무한한 사랑을 미처 떨쳐내지 못한 은수. 사랑하는 것에 중독된 남자와 사랑받는 것에 중독된 여자의 결말은 더 이상 영화에선 다뤄지지 않는다. 형의 유골을 강에 뿌리며 사랑을 위해 자신의 삶을 버리기로 선택한 대진과  자신에게 벌어질지 모르는 일들을 모른 채 그저 그를  바라보던 은수. 어쩌면 관객은 이미 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연인이 아닌 마치 이제 갓 시작한 이들처럼 보이는 대진의 행동과 눈빛에서 이미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때때로 상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놓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존재한다. 그토록 연애 고민을 토로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이미 그들의 사랑은 유통기한을 넘어섰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굳이 누구와의 연애에 대해 골몰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그 깊어지는 연애가 두려워 회피하기에 이른다. 순간의 설렘만 취하며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감정 상태는 사랑이란 이미 중독되버리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이 취하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연애가 끝났음에도 쉽게 놓지 못하는 이, 연애 감정에 취하여 연애가 종료될 때마다 어떠한 애도 기간 없이 바로 다음 연애를 시작하는 행동들, 깊은 관계가 두려워 회피하는 이들까지. 어쩌면 영화 <중독>은 사랑에 중독된 이들에게 보이는 처연한 시선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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