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1.27] 꿈의 심슨마을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 더 그로브, 파머스마켓을 가다

by 사서 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앞서, 나는 심슨가족 스프링필드 게임을 5년이나 할 만큼 심슨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90년 대생들은 모두 공감할 투니버스의 황금기 시절, 해당 채널에서는 밤늦은 시각 어른들을 위하여 심슨네 가족들을 상영하였고, 채널의 의도와는 다르게 학창 시절 나는 부모님 몰래 숨죽여 티비를 시청하곤 했다. 심슨네 가족들의 모든 에피소드를 챙겨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터넷에 흔히 돌아다니는 '심슨 감동짤' 등의 장면들을 직접 시청한 정도랄까. 아직도 그 특유의 몽환적인 아카펠라와 함께 구름이 걷히는 오프닝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인다. 마치 프렌즈의 오프닝을 볼 때와 같은 감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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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영화 <라라랜드>촬영지 만큼이나 고대하고 고대하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기 전에 앞서 나는 한번 즈음은 먹어보아야 한다는 그 유명한 에그슬럿에 들렀다. 사실 여행지에서 먹부림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나는, 종종 의무감에 반드시 이곳에서 먹어야 하는 것들만 골라 먹곤 하였는데 당시의 심정도 그러했다.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한국에서 론칭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희소성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다행히 놀이공원을 가기로 마음먹은 날 날씨는 화창하였고, 주문을 하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바로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에그슬럿 샌드위치의 이미지는 나처럼 케밥이라든지, 서브웨이 등의 음식을 먹을 때 질질 흘리고 마는 칠푼이 성격을 지닌 이들이라면 경계할만한 비주얼이었다. 조심스럽게 먹지 않으면 그대로 계란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아 한입 베어 볼 용기조차 안 나는 그런 비주얼이랄까. 다행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계란과 느끼함을 잡아주는 아메리카노의 조합은 브런치로서 손색없었다.


그렇게 홀로 한국에서는 즐기기 힘든 평일 오전의 브런치 시간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옆자리에는 여행 온 한 가족이 앉아있었다. 아이들이 아버지는 메뉴판을 고심히 보시더니 아이들이 그나마 좋아할 것 같은 메뉴로 주문하셨고, 엄마는 조잘조잘 거리며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며 두 분 다 몹시 분주해 보였다. 나는 아기들만 보면 이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인지라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 때 조심스레 눈인사도 해보았는데, 단란한 가족을 보며 나도 언젠가 내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심심한 상상을 해보았다. '엄마가 젊었을 때 경험한 나라야'라며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는 그런 순간에 대해. 사소한 사색과 맛있는 아점,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을 누리며 여유를 부리다 이내 바로 맞은편에 있는 엔젤스 플라이트로 발길을 향했다. 영화 <라라랜드>처럼 날이 좋은 날 꼭 한 번 더 다시 타보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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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우중충하던 때 탑승했던 것과는 다르게, 햇살이 내리쬐는 엔젤스 플라이트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다시금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이 유명한 관광지에는 사람이 많았고, 고작 계단 하나를 오르고 내리는 것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다만 혼자서 여행하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문득 동행이 있었다면 하고 바랬던 순간은 복잡한 놀이동산도 아닌, 바로 이 엔젤스 플라이트를 두 번째로 탔을 때였다.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어쩌면 '영화 속 장면이 바로 이것이었어!'라며 크게 환호해 줄 누군가가 없다면 조금은 심심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어 보았던 것 같다.


해가 쨍쨍할 때 서둘러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도착하고 싶었던 나는 이윽고 리프트를 불러, 기사님과 함께 소소한 수다를 떨며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기사님과는 당시엔 그저 핫한 이슈 즈음으로 생각되었던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기회다 싶어 평소 궁금하던 LA 지하철 카더라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LA 대중교통은 몇몇 글들에서는 가급적 경험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였고, 모험심 가득한 나마저도 그저 경험만으로는 덥석 시도할 수 없는 일들 중 하나였다. 기사님의 답변은(내가 영어 듣기를 제대로 한 것은 맞다면), 대중교통은 탈 수 있으되 잠들면 총을 맞거나 강도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고 나는 고작 한낱 호기심으로 내 목숨을 내던질 순 없기에 겸허히 그 의견을 수렴하였다. 강도를 당할 만큼 부티 있어 보이는 사람은 아니나, 강도를 맞닥뜨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동전까지 탈탈 털어서 줘야 할 것은 분명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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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리프트에서 내려 입구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장할 수 있었다. 유니버설 로고 밑에 분수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에버랜드를 처음 갔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저 이 분위기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과 화는 잠시 잊게 만드는, 놀이공원이 주는 어떤 행복감. 마치 잠시나마 동화 속 세상을 허락하게 해주는 것만 같은 그 특유의 분위기는 홀로 놀이동산을 왔다는 외로움을 잊게 만들었다. 홀로 분수에서 크게 V자를 그리며 모르는 분에게 사진도 부탁하며 그렇게 유니버설 스튜디오 안으로 입장했다.


입구에 조금씩 들어가니 쿵푸팬더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고 나 역시 덩달아 인파 속 분위기에 휩쓸려 연신 공연을 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홀로 카메라를 들고 있다 보니, 공연하시는 분들은 이따금 내 카메라를 보며 윙크를 해주셨고 나는 동영상에 행복한 비명도 섞어가며 그렇게 첫 퍼레이드를 즐겼다. 날씨는 이날따라 유난히 따사로웠고, 손에 꼭 쥔 지도를 보며 어디를 둘러볼지를 물색한 나는 곧이어 앞서 다녀간 친구가 추천했던 해리포터 빌리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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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OST만 들어도 웅장해지는, 이 정도면 같이 컸다고 할 정도로 무방한 해리포터 시리즈. 영화 속 공간을 본떠 만든 해리포터 빌리지는 지팡이를 탄 마법사들이 날아다닐 것만 같이 꽤나 잘 만들어졌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안에는 인형복이나 코스튬을 한 분들이 한 빌리지마다 특유의 컨셉으로 있었고 혼자였던 나는 주변 분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그분들과 가급적이면 많은 사진을 남겼다. 우선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어트랙션은 다 타보자는 심산으로, 해리포터 어트랙션을 먼저 찾아가 보았는데 먼저 찾아간 곳은 본의 아니게 올리밴더의 지팡이 가게였다. 빌리지 초입에 길게 줄이 늘어져있어, 그 유명한 해리포터 어트랙션인줄 알며 뒤에 함께 줄 서계신 가족분들께 혹시 이거 무섭냐고까지 여쭤보았는데. 지팡이가게 안의 불이 어두워지더니, 올리밴더가 어린 손님 한 명을 선택하여 지팡이를 뽑게 하는 것이 아닌가. 행복해하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트랙션인줄 알고 찾아온 29살은 끝끝내 이 지팡이가게가 어떻게 하면 무서워진다는 건지 의구심을 놓을 수 없었다. 나와서 안 것이었지만, 해리포터 어트랙션은 성 안에 위치해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가방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해리포터 어트랙션 탑승하며 금방이라도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상황에서도 가방문이 열릴세라 노심초사하며 손잡이가 아닌 가방문을 붙잡고 있었다. 안전바를 가방과 함께 맸던 탓에 가방문이 쉽사리 열린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을 테지만 지퍼가 아닌 자석 하나로 나의 온 짐을 담고 있는 가방이 어찌나 불안해 보이던지. 게다가 해리포터 어트랙션은 위아래로 수직 곡선을 그리며 고꾸라지는 다른 놀이기구와는 달리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법사 지팡이에 탑승하여 본의 아니게 퀴디치 경기장 한복판에 들어선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비록 내 짐들은 안전했지만, 해리포터 어트랙션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채 온몸의 신경을 가방에 쏟았던 나는 어트랙션이 끝나고 난 뒤 속이 메슥거려 내리자마자 콜라부터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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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슥거리는 속을 탄산음료로 달래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스프링필드에 입성했다. 만화 속으로 그대로 들어온 것처럼 푸른 날씨에 알록달록한 스프링필드의 조형물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고, 놀이공원에 홀로 왔다는 그 어떤 외로움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에 바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보통은 그저 어깨동무에서 그치던 캐릭터분들에 비하여 사이드쇼밥에게 손등키스를 받았던 것인데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던 터라 혼자서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친근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홀로 음료수도 사 먹고, 사진이 잘 나올만한 곳에 서서 사진을 부탁하며 찍기도 하고, 어트랙션도 타며 그렇게 심슨 스프링필드에서의 관람을 마쳤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반드시 들고 왔어야 할 굿즈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긴 하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빠질 수 없다던 스튜디오 투어버스에 간신히 줄을 서며 투어 시간 동안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투어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40분가량 유니버설 촬영지를 도는 것이었고, 쥐라기 공원이라든지 그 유명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에서 노먼의 집까지 볼 수 있었다. 그 밖에도 죠스, 분노의 질주 등 다양한 영화 촬영지들을 볼 수 있었고 어느 영화에서 나온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폭우로 인해 무너진 흙이 금방이라도 투어버스를 덮칠 것 같은 생동감 있는 특수효과도 볼 수 있었다. 나의 영어 듣기 실력이 지금보다도 더욱 형편 있었다면 온전히 투어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대략적으로 어느 영화에서, 어느 장면인지 정도는 들을 수 있다는 것과 며칠 동안 영어로만 듣고 말하다 보니 영어실력이 소폭 상승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하루 동안 즐길 걸 다 즐기고 나서야 불현듯 에어비앤비에 내가 고데기 콘센트를 꽂았는지 뺐는지 갑작스럽게 헷갈리며 공포에 떠는 와중에도 이대로 갈 수 없다며 마지막 어트랙션에 탑승했다. 이게 후룸라이드처럼 물을 맞는 것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그 때문에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 지독하게 감기에 걸려 남은 여행에서 이틀 가량을 이모댁에서 앓아 눈을 줄은 상상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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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a의 'Take on me'가 흘러나오는 유니버설의 밤은 누구보다도 알차게 하루를 보낸 나에게 마지막 선물과도 같았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셉이 미아와 파티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셉이 연주하던 노래를, LA의 화려한 전광판들 사이에서 듣는 그 기분이란. 오히려 4D 어트랙션들보다도 그 순간이 놀이기구와도 같았고, 그 자체가 오늘 하루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한창 그 기분을 만긱할즈음 직장에서 별안간 걸려온 업무전화로 1시간을 땅바닥에서 보내야 했지만.


상황인즉슨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 완료했던 일이 중간에서 의사소통이 안되어 다른 부서에서 다시 일을 처리해 줘버린 형국이었고 나는 일을 미루고 놀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열심히 설명한 뒤 다행스럽게도 마무리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1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업무전화로 (더군다나 내 실수가 아닌 일을 내가 해명하느라)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아쉬웠으나 어쩔 수 있으랴. 일개미들에게 온전한 휴가는 퇴사 말고는 방도가 없으니. (더군다나 이제 나는 더 이상 퇴사가 부럽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남은 하루를 파머스마켓에서 마무리하고자 리프트에 탑승했다. 리프트에는 나 말고도 환갑 즈음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도 같이 탑승하셨는데, 두 분의 빠른 대화에 어떻게나마 한마디라도 거들고 싶었고 다행스럽게도 그 두 분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종종 내가 한마디씩 거들면 느린 영어로 친절하게 대답해 주곤 하셨다.


리프트 기사님과 동행하신 할아버지의 연배는 비슷해 보였고 두 분은 대략적으로 옛날 할리우드의 그렇고 그렇더라는 가십거리와 이 부근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듯하였다. 이야기를 하던 중간에 기사님은 혹시 이 노래 아냐며 깜짝 퀴즈쇼까지 하셨고, 종종 내가 아는 배우의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함께 맞장구를 치곤했다. 기사님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산다는 언덕배기(스타라인 투어)로 돌고 돌아 나 홀로 여행객이 쉽게 생각해내지 못한 코스에 야경까지 보게 해주셨고 덕분에 파머스마켓으로 향하는 길을 꽤 심심치 않게 다녀올 수 있었다. 두 분은 내 나이가 당시 비록 29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10대로 보셨는데 위험한 곳은 혼자 가지 말라, 혼자서도 보호자 없이 여행을 온 것이 대단하다 등등 실컷 칭찬을 하시다가 막판에 내 나이를 듣고는 꽤나 놀라셨다. 아마 '아시안들은 역시 동안이야'라는 클리셰에 내가 한몫을 더하지 않았을까.

20200127_192136.jpg 파머스마켓 시계탑(Farmers Market Clock 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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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스마켓은 LA에 위치한 대규모 야외 시장으로 흡사 재래시장과 갤러리아를 합친 듯한 묘한 분위기의 시장이었다. 파머스마켓 입구로부터 들어가다 보면 야경이 몹시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이미 다녀온 비버리 힐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주황빛에 가까운 전구들이 어두운 밤 아래 따스하게 빛났고, 가운데로는 전차가 지나가는 이국적인 풍경. 아침부터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하루 온종일 돌아다닌 데다가 아직까지 내가 고데기 콘센트를 뽑고 나온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피곤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방문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조금 더 야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담아내고자 열심히 카메라 설정값을 바꿔가며 최대한 아름다운 사진을 담으려 애썼고 어느덧 저녁시간도 훌쩍 지나간 터라 포장마차처럼 생긴 식당에 들어갔다. 비록 고급 다이닝 레스토랑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투박한 스파게티가 시장에는 더욱 어울리는 듯하였고 면이 제대로 다 익지 않은 불상사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완벽한 한 끼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의 기어 오다시피 집에 들어와 하루 종일 먼지에 뒤덮인 핸드폰부터 물티슈로 닦아내고 손을 씻었다. 오후 내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고데기는 콘센트가 뽑힌 채, 심지어 돌돌 말아져 가지런히 탁자에 올려져 있었고 나는 대체 뭣하러 이 걱정을 하며 오후를 불안하게 보냈는지 허탈했다. 오늘 내가 얼마나 행복한 하루를 보냈는지, 혼자여서 외롭지 않았던 여행을 하였는지 되새기며 9년 만에 방문할 이모댁을 떠올렸다. 스무살에 이모가 끊어주신 티켓으로, 이모에게 의지하여 구경하던 오렌지카운티를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은 채 홀로 캐리어를 끌고 집 앞까지 찾아가게 될 줄이야. 몇 년 만에 뵙게 될 이모, 이모부, 언니도. 9년 만에 찾아간 오렌지카운티도 모두 그리웠다. 환상으로 가득 채웠던 LA여행을 뒤로하고, 나를 호주로까지 이끌었던 낯설지만 그리웠던 그 도시로 떠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