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닐 때마다 나는 그 주변에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최대한 살핀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것을 경험해보려는 욕심 탓인지 나의 여행스타일은 누누이 말해왔듯 9시간 넘게 밖으로 쏘다니는 것이었고, 실제로 여행에서 돌아와 많은 기억을 남긴 덕에 이러한 여행스타일은 퍽 만족하며 산다. 하도 이렇게 다니다 보니 나에게도 여행할 때 생긴 소소한 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글지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구글지도에는 현재 내 위치에서 돌아다닐만한 관광지들을 제법 추천해 주었고 나는 국내정보가 주를 이루는 네이버보다는, 현지 정보를 얻기 용이한 구글을 줄곧 애용했다.(사실 시드니에서 살던 1년 동안 구글이 꽤 친해졌던 덕이기도 하고) 어느덧 미국에서는 고작 이틀 남짓한 일정이 남았고, 나는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은 마음에 평소처럼 갈만한 곳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근방에 작은 지역도서관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직업적인 이유로 인근도서관은 무조건 가보아야 하는 성미와 리처드 닉슨 박물관 정원을 아름답게 찍은 사진에 홀려 미국에서의 마지막 나홀로여행지를 두 곳으로 정했다.
일터로 향하시는 이모가 중간에 내려주신 덕에 근처 마켓에서 스시를 사 먹은 뒤 리처드 닉슨 박물관으로 향했다. 애당초 리처드 닉슨 박물관으로 행선지를 정한 것은 당시엔 휴관이라 볼 수 없던 도서관 때문인지라, 박물관의 주인에 대해 많은 정보가 없던 나는 외부에 있던 로즈가든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퍼스트레이디의 로즈 가든과 도서관 건물은 규모도 엄청난 데다가 중앙에 큰 인공 호수도 있어 벤치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퍽 행복해졌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대해 흥미가 없이 찾아간 곳임에도 정원이 크고 아름다워 시간을 낸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 정도였달까. 나중에 안 사실은 그곳에서 결혼식을 꽤 진행한다는 것이었고, 이토록 아름다운 정원이라면 자신의 결혼식을 이곳에서 치른다는 것에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뒤늦게 흥미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1년 후 허지웅작가의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닉슨에 관한 글을 읽고 난 후였다. (씨네21 웹사이트 경사기도권 코너에서 허지웅이 책에 수록한 '<더 포스트>를 보며 다시 생각한다, 영화가 사랑한 악당 닉슨에 대하여'를 읽어볼 수 있다.) 허작가의 글을 잠시 내 여행기에 옮겨보자면 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 속의 숱한 성공과 화려한 유산보다 닉슨의 실패와 몰락은 더 강력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대부분의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 반면 실패는 악운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패는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직면한 실패가 자연스런 결과로서의 실패인지, 혹은 의도에 의한 음모와 배신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나라는 인간의 꼴은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순간 결정되는 것이다."
종종 여행지에서 돌아와 그때 내가 갔던 장소가 의미가 있던 곳임을 깨닫곤 한다. 시즌1의 1화부터 아껴가며 보다가 여주인공들이 결혼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지막화를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아 아껴보게 되는 프렌즈의 촬영지를 스쳐 지나갔던 것이라든지. 당시에는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 미국대통령의 박물관이라든지 그런.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박물관은 그의 집무실에서 사진을 찍어보는 체험을 하며 미국을 상징하는 기념품을 만지작거리고, 그의 유년시절을 옮겨놓았다는 곳을 둘러보며 다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듣다 포기해버리기엔 다소 아까운 곳이었다.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기 전이라도 닉슨에 대한 영화까진 고사하더라도 허지웅작가가 쓴 글을 읽고 갔더라면, 그냥 그렇게 둘러보고 오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비록 박물관 정원의 아름다움에 홀려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감탄했을지어도 좀 더 의미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장소를 그저 스쳐지나왔다는 생각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역시 인품마저 완벽한 위인들보다도, 끝내 스스로의 결핍에 사로잡히고만 이들에게 퍽 흥미가 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현재까지도 꽤 다양한 작품에 캐릭터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의 업적보다도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치닫는 어떤 결핍 때문은 아닐까.
리처드 닉슨 도서관&박물관 (The Richard Nixon Library & Museum)
그렇게 1년이 지난 후에야 아쉬워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리처드 닉슨 박물관에서 요바린다 공공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서로 근무하며 뿌듯한 순간들 중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찾아가는 지역도서관에서 현지 사서선생님들이 같은 사서라는 이유만으로 외국에서 온 나를 환대해 주신다는 점이었다. 케언즈 도서관에서도 그러했고 작은 공공도서관에서 쭈뼛쭈뼛 들어가 영어로 한국에서 온 사서라고 소개하면 현지 선생님들께서는 꽤 큰 리액션으로 받아주시고는 하는데 이는 동네도서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큰 환대였다. 얼떨결에 요바린다 공공도서관 사서선생님들과 전부 일면식을 갖게 된 나는 그곳 선생님들의 안내로 도서관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고 그것은 다른 관광지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어떤 벅찬 감정을 들게 했다.
요바린다 공공도서관 (Yorba Linda Public Library)
요바린다 공공도서관은 케언즈 공공도서관처럼 지역도서관임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독서행사들이 있었고, 한국의 공공도서관보다는 조금 더 정감이 느껴졌다. 내가 모든 전국의 도서관들을 다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지역 공공도서관은 작은도서관의 이름을 달고 있으면 그야말로 규모가 '작아서' 공공도서관의 모든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웠고 빌딩의 형태로 지어진 공공도서관은 어딘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에 내부가 따뜻하다는 느낌은 쉽게 받을 수 없었다. 물론 한국 내에서도 지역 사정마다 그리고 당시 도서관이 지어질 때의 사정에 따라 도서관 앞에 '작은'이란 수식어가 붙어도 그 규모가 꽤 큰 곳도 있는 데다가 한때 북카페의 열풍으로 전체적으로 우드톤의 느낌을 풍기게 하는 도서관들도 더러 있다. 다만 내가 말하는 그 정감있다는 느낌은 뭐랄까. 오래된 도서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과 동네도서관만의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랄까. 내가 흔히 다녀본 한국의 지역 공공도서관과 호주 케언즈 공공도서관과는 다르게 요바린다 공공도서관은 조금 더 책방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큰 창 앞에 놓인 오래된 패브릭 소파 덕분인지, 사방이 나무색인 내부 인테리어 때문인지는 몰라도.
떠나기 전 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행사팜플렛들을 몇 개 받으며, 요바린다 시민들만 가질 수 있는 도서관 대출증도 함께 선물받았다. 나만 그런 것인지 몰라도 이상하게도 누군가 문헌정보학과라든지 사서라든지 또는 책과 연관된 일을 한다는 사람이라 한다면 그렇게 몹시 반가울 수가 없다. 나 역시 그러한 이유로 외국도서관 사서선생님들께 큰 환대를 받았고 일반 관광객이었다면 쉽게 얻을 수 없는 선물까지 받았으니. 때때로 이런 일들일 있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사서라는 직업이 좋은 것인지 혹은 사서인 내가 좋은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저 사서예요'라는 자기소개를 할 때 조금이라도 더 떳떳할 수 있도록 직업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들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현재 근무하고 있는 근무지에서 사서로서의 존재감이 미비할지어도. 그 다짐을 잊고 때때로 권태에 매몰될 지어도.
나홀로하는 마지막 여행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 뒤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 아쉬워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늦장을 부리다 뒤늦게 이모댁으로 돌아왔다. 누가 보아도 만족스럽지 않을 리 없던 그날 나는 이상하게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박물관에서 요바린다 공공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에선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단독주택들이 줄지어있었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푸르러서 내가 서있는 이곳이 정말 다른 세상이고,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절로 수긍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애써 인정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며 부정하던 사실들을 비로소 맞닥뜨렸다고나 할까. 호주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정신없이 살다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어떤 갈망들을 다시 목도한 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발붙이고 살아갈 곳은 비자 하나 쉽게 얻을 수 없는,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민국들이 아닌 나의 커리어를 인정받을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언어들로 도배된 한국이라는 것을. 스무 살에 미국에서 한국과 다른 문화권을 처음 경험해보며 가졌던 어떤 동경들은 철저히 환상이었음을 호주에서 깨달았지만, 도리어 한국으로 돌아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살아가던 내가 비로소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실감하고만 것이다. 그 계기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야경이 펼쳐진 천문대도 아니었고 그저 직업이 사서가 아니면 찾아갈 리 만무한 동네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 한복판이었다니. 인생을 살면서 때때로 어떤 감정들이 물밑듯이 몰아치는 순간들이 그저 걷다가 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생각의 생각이 탑으로 쌓이다 못해 이내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 머리를 한대 맞은 듯이 쏟아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곳에서 외국에 대한 갈망과 잡념들을 꾹꾹 눌러 담아 마음속 깊은 밑바닥 언저리로 묻어버렸다.
여행으로 돌아와 1년이나 지난 지금에선, 그때의 그 선택들이 도리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터지지 않았어도 나는 나의 나라에서 두 발을 꼭 붙인 채 살아내고 있을 터였다. 당시엔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박물관이 시간이 흘러 아쉬운 곳이 되었고, 여전히 내 벽 한쪽에는 요바린다 도서관에서 선물 받은 대출증이 고이 붙어있다. 20대의 마지막이었던 나는 어느덧 서른에 도래했고 당시엔 슬프게만 느껴졌던 그 거리의 풍경도 이제는 그저 날씨가 좋았던 곳으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