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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09. 2021

<폭풍의 언덕>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욕망에 관하여

흔히들 말하는 막장드라마의 시초에는 모두 고전을 기원으로 했다는 것을, 어쩌면 많은 이들은 모를지도 모른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 내면으로 인해 치닫는 파국. 모든 고전소설이 간혹 '읽기 어렵다' 혹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는 이유로 독자들에게 멀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나 역시 그 들 중 한 명이었기에 그들을 탓할 수 없다. '폭풍의 언덕'은 '제인 에어'를 집필한 샬롯 브론테의 자매인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이자,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소설이 뒤늦게 빛을 발하여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고전소설이다. 모두 한번 즈음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정작 읽어보지는 못했던, 또는 많은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읽는 것을 시도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시도해보면, 당신도 모르는 새에 워더링 하이츠 한복판에 서서 주인공들의 파국을 함께 목도하게 될 것이다.


어느 황량한 언덕에 놓인 저택 워더링 하이츠에 살고 있는 캐서린은, 자신의 아버지가 데려온 고아소년 히스클리프와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다.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주인 언쇼는 히스클리프를 인간적으로 대했지만 그것이 늘 고까웠던 언쇼의 장남 힌들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히스클리프를 그 집의 하인보다 더욱 못한 대접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자신의 동생인 케서린과 자신이 혐오하는 히스클리프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지도 모른 채. 몇 년 후 캐서린은 근처 저택의 아들인 에드가와 결혼을 하게 되고, 히스클리프는 홀연히 그 집을 떠나 자취를 감춘다. 다시 시간이 흘러 에드가의 부인이 된 캐서린은 몇 년 후 부자로 돌아온 히스클리프와 마주하게 되고,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에 대한 열망과 복수심으로 그녀의 주위를 맴돈다.


소설 <폭풍의 언덕>은 부자로 돌아온 히스클리프가 소유한 저택의 손님으로 잠시 머물게 된 '록우드'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잠시 워더링 하이츠에 묵게 된 록우드는 캐서린의 유령을 보게 되고, 무뚝뚝해 보이기만 하던 히스클리프가 그녀의 영혼을 향해 돌아오라며 울부짖는 것으로 서사는 시작된다. 소설은 전부 1인칭 시점이면서 관찰자이자 서술자로서 모든 서사를 이어가는데 그것이 꽤 생생히 묘사된다. 주인공들의 서사를 설명하는 록우드의 가정부이자 전 캐서린의 보모인 '넬리'의 이야기에 점차 빠져드는 것은 소설 속 록우드뿐만이 아니다. 독자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이야기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설 속 록우드처럼 어느새 그 들의 이야기에 잠식된다.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남들의 이야기에 쉽게 흥미를 잃지 못하는 우리의 관음증이 발현되기라도 하듯이.


<폭풍의 언덕>은 단순히 지독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두 남녀의 격정적인 사랑은 에로스적인 느낌이라기보다, 두 사람의 폭풍 같은 성정에 기인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인 것을 알면서도 중독되고 만 두 남녀는 패악질을 부리며 심통을 내면서도 서로에게 강렬히 끌린다. 당시의 시대상과 계급간, 인종간의 차별을 생각하자면 두 사람의 이별과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어쩌면 예견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은 히스클리프가 복수를 꿈꾸며 두 집안을 잠식해나가는 과정과 인간 날것의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는 캐릭터들을 통하여 하나의 서사시로 막을 내린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이기심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파멸과 사랑을.


처음이자 마지막 장편소설을 유작으로 남기고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된 에밀리 브론테의 나이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같은 서른 살이었다. 그녀는 겉으로는 말수가 적고 도덕적이었으나 자신의 주장이 강하며 내면에는 야성적인 면모가 분명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소설 <폭풍의 언덕> 속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어쩌면 자신이 사랑한 황량한 고향에서 자신의 내면을 소설에 반영시킨 한 젊은 여성작가의 모든 자아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나면 <폭풍의 언덕>은 사랑에 미친 어느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아닌, 억압된 시대를 살고 있는 한 개인의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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