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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ul 26. 2021

<결혼 고발> 너무도 이상적이지만,무시할 순 없는

서른살 미혼여성이 읽어본, 유부녀 페미니스트의 결혼 고발

도대체 어떤 사유로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당시 나는 20대가 끝나간다라는 어떤 초조함 같은 것들이 있었는지 결혼에 대하여 고민해 보기 시작했고, 실존하지 않는 계획인 결혼과 실존하는 계획인 대학원 사이에서 비용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곧바로 하지도 않을 결혼을 위해서 학자금대출을 왜 고려해 보았나 싶지만, 그때는 '미혼에게 결혼자금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꽤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당시 만났던 소개팅상대들은 내게 '보이는 이미지에 비해 할 말을 다하시네요'라는 등의 무례한 발언을 일삼으며, 본인이 생각한 교직원으로서의 나의 조건과 이미지에 환상을 심은 채 철저히 나를 '결혼에 적당한 소개팅상대'로 대했다. 물론 그렇게 노골적으로 계산을 드러내는 이들과는 두 번째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렇게 결혼에 대하여 꽤 골몰하던 시기를 지나 대학원에 입학하며 '결혼자금'을 위해 저축하는 일을 과감히 포기하자 자연스레 결혼에 대한 압박과 기대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다행인 것은 결혼에 대하여 꽤나 관조적인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 되려 결혼에 대해 더듬이가 바짝 세워졌을 당시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되려 더욱 조급증이 나거나 혹은 비관적으로 결혼을 포기해버렸을 터였다.


저자 <사월날씨>는 주변에서 흔히 보기 힘든 유부녀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과 철저히 반대되어 있는 것이 유교와 가부장제의 뿌리를 내린 우리나라의 혼인문화라고 생각해 본다면 사월날씨 작가의 글들은 꽤 희귀하다. 이 글을 앞서 나는 페미니스트임을 혹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것이 옳다면, 나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보통의 30대 한국여성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낫겠다. 아무튼 <결혼 고발>은 이미 결혼제도의 발을 들인 여성이 가족 구성원 내에서 가부장적 관념들을 끊임없이 깨부수고자 노력하는 기록을 담은 결혼체험기라 볼 수 있겠다. 미혼이기에 감히 속단할 순 없지만, 작가가 겪은 가부장제의 갈등이 때때로 당사자가 예민하게 느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점도 있었고, 반대로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공감하는 부분들도 여럿 있었다. 다만 이 책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점은 작가는 결혼하기 이전에 1명의 개체로 독립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이상과 결혼제도가 과연 애초에 섞이려야 섞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물과 기름이 만난 것인데 둘을 애써 저어본다 한들 과연 섞일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든달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 고발>은 미혼인 독자가 읽기에도 여성이라면 주변 기혼자들에게 들어보았을 '며느리의 삶'에 대하여 꽤나 사실적으로 적힌듯했고, 작가 본인도 스스로도 시부모와 남편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여러 번 밝힌다. 다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실현되기 힘든 지점들을 작가는 이상적으로 꿈꾸는듯하였고, 그러한 인식의 변화와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도약하는 균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결코 이해하기 힘든 영역으로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유독 사위에게는 강요되지 않은 것들이 며느리에게는 강요되는 것이 분명 존재하고 사위는 백년손님이지만 며느리는 결코 손님이 될 수 없는 우리나라의 결혼문화에 나 역시 타협할 자신은 없지만 이것이 과연 윗세대를 이해시킬 수 있는 것인가라는 허무함도 더불어 따라온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도 하나의 개체로 이해받을 수 있으며, 자식 내외를 독립된 또 다른 가정으로 인정하실 수 있을 시댁을 만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가장 무난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작가의 의도와 실제 작가가 가부장제를 타파하려 했던 노력들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었을 테지만, 오히려 높은 이상이기에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작가는 남편과 이불을 따로 덮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각자의 수면패턴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왜 굳이 부부라는 이유로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적었고 나는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불을 넘어 각자의 집이 있기를 희망한다는 작가의 의견에는 의아함이 절로 따라왔다. 그 순간 나는 작가가 원했던 것이 본가에서의 독립인지 혹은 새로운 가정 안에서의 독립인지 선뜻 구분하기 어려웠다. 책 <결혼 고발>은 이처럼 너무 이상적이기에 되려 현실적으로는 거부감이 따라오는, 그러나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마치 각자의 집이 있기를 희망한다는 대목에서는 꽤나 갸우뚱스러우면서도, 부부가 각자의 수면패턴을 애써 무시하며 한 침대와 한 이불을 애써 덮어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주제에 대해선 짚고 넘어가 보아야 하듯이. 이런 많은 어려움들이 따라옴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할 결혼은 과연 어떤 형태이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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