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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11. 2021

인어언니 이야기

제13회 공유저작물창작공모전2차 - 글 부문 응모작

바다왕국에 인어공주가 아닌 또 다른 인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왕족인 인어들만이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 그리고 무지개색이 빛나는 꼬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기록되지 못한 또 다른 인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인어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 비눗방울이 된 지 여러 날. 바다왕국에서는 인어공주의 희생을 안타깝게 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인어공주에게 목소리를 가져간 대신 다리를 준다고 약속했던 마녀에 대한 이야기 역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인어들은 마녀와 공주가 한 거래가 공주에게 죽음을 가져다주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하여 마녀에 대해 수소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녀는 자신이 얻을 수익을 애써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인어들이 자신의 꼬리 대신 인간의 다리를 원할 때, 한 인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다리를 얻는다 한들 공주와 같은 외모를 지니지 않았다면 왕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요. 그러나 인어는 차마 그 이야기를 다른 인어들에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다른 인어들에게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어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요.


"나 마녀와 거래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거든. 그와 함께하기 위해선 나도 공주처럼 다리가 필요해."


어느 날 인어의 언니가 인어에게 찾아와, 자신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인어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언니의 얼굴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고, 인어는 그러한 자신의 언니를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습니다. 언니에 대한 걱정과 마녀에 대한 불신은 그녀의 언니도 눈치챌 수 있었을 정도로요.


"그가 언니를 사랑한대?"

"응,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아? 보이지도, 들을 수도 없는 것 때문에 나는 언니를 잃을 수 없어."

"공주가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건 왕자에게 자신이 당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어서였어. 하지만 우리는 달라."


확신에 차있는 언니를 보자 인어는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 없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은 왕자와 공주처럼 굳이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있어야만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말했습니다. 그런 언니를 인어는 더 이상 말릴 수 없었고, 결국 사랑하는 언니를 마녀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어는 불안한 마음에 언니를 몰래 뒤쫓아가 마녀에게서 언니를 구해내야만 한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심지어 인어는 그녀의 언니가 마녀에게 무엇을 내줄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설득할 다양한 방법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윽고 언니와 마녀가 거래를 하는 날, 인어는 뒤에 숨어 언니와 마녀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마녀는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다리 대신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지?"

"저도 공주처럼 목소리를 드릴게요."

"내가 공주와 목소리를 거래했던 이유는, 그녀의 목소리가 유달리 아름다웠기 때문이야. 너는 굳이 내가 목소리를 가져갈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마녀의 질문에 언니는 그저 놀란 얼굴로 멍하니 마녀를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너는 공주처럼 아름다운 외모가 아닌걸. 차라리 너에게 아름다운 외모도 함께 주는 대신에 너의 남은 수명을 내가 가져가는 것은 어때? 저주가 완성되려면 두 사람의 사랑이 필요해. 그러나 너의 짝이 사람이 된 너를 배신이라도 한다면, 내 저주는 완성될 수가 없잖아?"


마녀의 제안의 인어의 언니는 고민하는 듯 보였고, 인어는 그 자리로 뛰어들어가 언니를 한사코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어는 언니에게 마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인간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지 말라며 애걸하였으나 인어의 언니는 결국 무언가 선택하는 쪽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인어는 어느덧 언니와 같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인어는 자신이 사랑하는 언니가 그리웠고, 결국 고민 끝에 그녀가 사는 곳으로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인어는 자신의 언니를 그 이후로는 보지 않기로 결심하였으나 언니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바라던 하나뿐인 동생이었으니까요. 인어는 머나먼 바다를 건너 조그만 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하얀색 등대 밑에 세워진 조그만 오두막에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온 동네를 맴도는 것만 같았습니다. 인어는 서서히 부두로 도착해 언니가 어딨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인어의 언니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남편을 본 인어는 놀란 마음에 짧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다리가 있었으나 걸을 수 없는 쪽은 언니의 남편이었거든요.


인어는 서서히 다가가 자신의 조카와 인간이 된 언니에게 인사를 건넸고, 언니는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을 보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지다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두 자매는 뜨겁게 포옹했고 잠시 후 인어는 언니에게서 마녀와 거래한 것이 무엇인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워진 외모와 다리 대신 수명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을 들은 언니의 남편은 그 날 밤 깊은 바닷속을 헤엄쳤습니다. 남편의 숨이 거의 끊기기 직전 그는 마녀를 찾아냈고, 처음으로 인간과 거래를 하고 싶었던 마녀는 남편의 거래를 들어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인어가 아닌 인간과의 거래는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까요.


결국 언니의 남편이 마녀와 바꾼 것은 자신의 다리와 언니의 수명, 그리고 언니의 본래 외모였습니다. 인어는 자신의 삶에선 도저히 납득되지 않을 언니의 선택을 이해하며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에게는 믿을 수 없는 삶의 형태와 사랑이, 언니에게는 존재했으니까요. 어리석게도 공주를 알아보지 못한 왕자보다 기꺼이 자신의 다리를 내준 언니의 남편을 보며 인어는 언니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인어는 언니처럼 바다 위 사랑을 찾아 헤매지도, 마녀와 그 어떤 것도 거래하지 않았습니다. 인어는 자신이 바다 위 세상보다 바다 아래 자신의 세상을 더욱 사랑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photo : Kseniya Kopn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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