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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7. 2021

<한국이 싫어서> 나는 떠났었네

2018 제7회 협성독서왕 독후감공모 응모작 :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호주로 출국하기 전 당시 내가 사놓은 책들의 제목을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잠시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부터 시작하여 <회사가기 싫은 날>,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도시에서 비둘기로 사는 법>까지. 제목으로도 충분히 화자가 누구일지를 유추할만한 책들 가운데 유독 제목부터 심금을 울린 책이 있었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을 당시 나는 진심으로 한국이 싫었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첫해는 도저히 업무체계가 바뀔 것 같지 않던 첫 직장에서 1년만에 뛰쳐나와 월 120만원가량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2년가량 휴직대체자로 일했다. 그 후에 취업한 곳은 규모에 비하여 사무실은 곧 망해갈 것만 같았던 재단이었는데, 그 곳에서 나는 파견직 형태로 근무하는 객식구에 불과했다. 왜 이렇게밖에 운영할 수 없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외근직이라는 이유로 책상도 없이 근무지를 전전하여야 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책상 한켠을 내어줄 수 없을만큼 협소한 사무실과 근무지를 보니 오히려 책상이 없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마저 도달했다.


호주행을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당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월호 사건을 비롯하여 기타 굵직한 사건들은 내가 이 나라에서 과연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이 나라의 노동법은 공급자가 아닌 철저히 소비자에 입각해있다는 사실에도 환멸을 느꼈다. 명절 중 하루는 유급휴가를 써야했고 공휴일마저 그 어떤 초과수당 없이 근무해야만 했던 나는‘이 것이 노동법일리없어’라는 생각으로 네이버 지식인을 뒤져가며 공휴일에 근무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찾아보았고 그 때 돌아온 노무사의 답변은 꽤나 섬뜩하였다.‘공휴일은 공공기관이 쉬는 날이지 노동자가 쉬는 날이 아닙니다.’라는.


학창시절 공부를 조금은 소홀히 했다는 죄목으로 평생의 운이 결정되는 사회구조도, 공휴일을 쉬지 못하는 것도, 취업이 힘들다는 것도 모두 내가 한국에 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가 망하는 징조는 모두 다 공무원에 매달릴 때라던데. 나 역시 신분상승의 길은 공무원이 유일해보였으나 그 기간동안 수입이 없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처럼 나는 얼굴이 김태희처럼 이쁘지 않았고 집에 돈도 없었으며 심지어 그녀보다 학벌이 낮은 전문대 출신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문대라면 고등학교 3년내내 놀다가 대학을 가야하니 별 수 없이 들어간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지녔다. 실제로 나는 공부를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다.


소설 속 계나는 나와 비슷하였다. 아니, 곧 그녀가 나였다. 그녀와 같은 이유로 한국이 싫어 호주행을 택했고 그 곳에서 나 역시 산전수전들 다 겪으며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고자 매일을 머리를 굴렸다.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한 것 역시 당장에 학교에 들어갈 학비를 투자할 용기가 없어서였고, 굳이 말해보자면 나의 워킹홀리데이는‘이민체험판’과도 같았다. 다만 나와 계나의 차이점을 들자면 나는 어느 곳에서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알았고 계나는 여전히 호주가 유토피아라고 믿고 있는 것이겠지.


제목부터 과감한 <한국이 싫어서>는 실제 사회상을 많이 반영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조금 잠잠해졌을지라도 책이 발간될 시점엔 수많은 젊은이들이(나를 포함한)이민을 원하였고, 꿈꾸었다. 소설 역시 그러한 주인공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다만 독특한 것은 소설의 결말을 철저히 단정짓지 않음으로써 주인공의 상황을 현재진행형으로 끝맺는다는 것이다. 현실과의 차이점은 소설이 발간 후 내가 호주로 출국한 시점에 이민법이 불리하게 개정되었고 10년가량 이민을 준비하다 돌아간 사람들이 허다하였으며 계나처럼 6년안에 시민권까지 취득하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상황이라는 것 정도. 이민을 꿈꾸고 도착한 나에게 닥친 현실은‘이민을 위하여 10년을 투자할 수 있냐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이민을 포기하고 귀국한 사례들을 지인들을 통해 듣자 내가 계란하나만을 들고 바위를 깨러 이 먼 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이 목표이던 사람은 하다못해 더럽힐수라도 있겠다만 이민은 달랐다. 계란은 계란일 뿐이었고, 바위는 바위일 뿐이었으니.


호주로 출국하기 전 수만가지의 글을 읽고 수십개의 웹사이트를 돌며 유독‘이 곳은 신뢰가 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 한 유학원이 있었다. 그 곳의 대표님은 유학원의 대표 블로그에서 이민에 대하여 꽤나 회의적인 글들을 올리시곤 하였는데 그 글들을 모조리 읽은 나로서는‘우리 유학원으로 오시면 이민을 할 수 있어요’라고 꼬시던 다른 유학원들과 비교되었다. 염려와 걱정을 담은 그 글들에 신뢰가 쌓였고 무엇보다 ‘이민은 시민권이 목적이 아닌 시민권을 받은 후의 삶 역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라는 대표님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으로 귀국하고 난 후에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나이기만 하면 돼>의 저자 역시 책 속에서 <한국이 싫어서>를 소개하곤 하였는데 그녀는 주인공 계나를 꽤나 염려하였고 다시 호주행을 택한 그녀의 결정이 과연 옳은가에 있어서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지녔다. 그 책을 읽을 당시 호주행을 준비하던 나로서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하여 우여곡절 끝에 외항사 스튜어디스로 근무 중인 작가의 말에 동감할 수 없었고, 사실 말하자면‘당신이 뭘 알아’라는 심보에 가까웠다. 1년간의 호주 생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하고 있는 지금 그 작가의 말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지만.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그러니까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주인공을 통하여 현실을 투영하되 그러한 현실에 내몰린 젊은이들을 감싸 안지 않는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이민은 시민권을 얻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라는 유학원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작품 전체를 관장한다.


작품해설처럼 한국은 젊은이들을 해외로 내몬다. 아메리칸드림 이후로 세월이 꽤 지났지만 이민의 형태는 바뀌어 사람들은 외국에서의 삶을 여전히 꿈꾼다. 그 시절의 이민이 자식을 위해서였다면 지금의 이민은 나를 위해서라는 것이 그 차이점이라는 것 정도. 그렇다면 흔히 부르는 헬조선에서 탈출만 한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실제로 탈출을 해본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헬조선을 나온다면 헬이국이 나올거야’라고. <한국이 싫어서>는 주인공 계나를 통하여 말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살건데.


주인공 계나는 놀랍도록 그녀가 싫어하던 한국인의 양상을 그대로 답습한다. 그녀처럼 시드니에서 키친핸드와 웨이트리스 경력이 있는 나로서는 그녀의 태도가 꽤나 안쓰럽다. 그녀가 옆에 있다면‘왜 그곳에서도 버리지 못하니 왜!’를 외쳐주고 싶다.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였을만하면서도, 계급사회가 싫어 뛰쳐나온 그녀의 인식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있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사람들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도,‘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하는가’라는 난제에서 오로지 돈벌이에 한정되어 있는 그녀의 편협함도. 몇 년째 9급공무원을 준비하는 여동생과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언니를 한심해하는 그녀의 말투에서 그 어떠한 애정은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한국에서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것이 꽤나 퍽퍽한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나의 판단에서 개인의 만족은 철저히 배제된다. 그녀는 꼰대보다 더욱 무섭다는 젊은꼰대라 할 수 있겠다.


<한국이 싫어서>는 그러니까 계나처럼 학벌도 안되고 외국으로 도망갈 배짱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하여 논하는 책과도 같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복제인간들은 그들을 가두는 시설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얻지만 우리가 속한 세상에서 그러한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꽤나 큰 기회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은 복제인간들 역시 먹고사는 지난한 문제를 곧 맞닥드릴 것이다. 그토록 싫어하던 한국을 떠나 몇 년간 호주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그녀가 싫어하던 한국인의 단점’을 고대로 답습하고 있는 그녀를 보자니 이제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가 아닌 어떻게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한국으로 돌아와 내가 얻은 결론은 어디에나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호주행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 곳에서 힘겹게 얻은 시민권으로 그 나라의 복지를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중요한 것은‘탈출’은 내가 추구하는 행복을 나 스스로 명확히 깨달았을 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 떠났던 나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생을 내건 모험을 포기하였다. 어쩌면, 소설 속 계나보다 나의 상황이 더 좋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시드니에서 숱하게 들었던‘몇 년전까지는 영주권 얻기 쉬웠어.’라는 그 몇 년전이 계나가 시민권을 취득하였던 시기였을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말할거면 왜 한국을 떠나서 고생만 하고 시간도 버리고 돈도 버렸냐는 말에 당당히 답할 수 있겠다. 그저 나는 행복을 찾고 싶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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