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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7. 2021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이토록 얼얼한 활자

2021년도 10월 나도, 에세이스트 24회 공모전 응모작

좋은 대학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일찌감치 내 주제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아는 아이였다. 작가지망생으로 유수대학 2곳에서 단편소설 공모전에 합격하였으나, 대학에 최종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백일장에서는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도저히 책과는 멀어지기 싫었던 나는 느닷없이 진로를 사서로 전향했고, 그렇게 최저임금을 받으며 혹독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20대 초반에 10살가량 많은 분과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장단점을 안겼다. 기본만 해도 이쁨을 받을 수 있으며 실수가 용납되는 나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어른들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며 정세를 파악해야 하는 것엔 큰 피로함이 따라왔다. 다행히도 좋은 분들을 만났고 그분들 덕에 어린 날 사회생활을 꽤 무난하게 보내왔다 자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는 어떤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남들이 컬러화면이 가득한 웹툰이라면 나는 이미 폐간을 앞둔 만화잡지의 한 코너와도 같이 느껴졌다. 남들의 청춘은 화려해 보였고 나의 청춘은 지난해보였다. 청춘을 이렇게 보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가득하였으나 전문학사 출신의 처우와 대우가 낮은 사서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하루빨리 안정적인 직장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딕펑스의 ‘viva청춘’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자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그때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하여 동네서점에서 발견하게 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홍인혜 作)’는 그렇게 내 인생에 안착했다. 제목이 도저히 읽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인지 많은 이들이 그 책을 집어들은 듯 이미 손때가 묻어있었고, 나는 홀린 듯이 새 책도 아닌 것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지금은 개정판이 나와서 노란 바탕에 빅벤이 그려져 있지만, 초판본엔 하얀색 양장본에 런던의 그림들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오로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그 제목이 나를 강렬하게 이끌었고, 그날 나는 그 책을 몹시 빠르게 완독한 것 같다.


이미 직장인으로선 중간관리자급까지 온데다가 곧 승진을 앞둔 저자는 한국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앞서 무수히 말한 제목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에 런던 장기여행을 기획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아직 싱글이었고, 이직을 할 수 있을 만한 적당한 경력을 지녔기에 장기여행에 따른 공백을 감당할만한 적기였다고 한다. 당시 청춘에 갈망과 갈증이 있던 나는 그 책을 이후로 두 번이나 더 완독하며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을 무언가를 해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골몰했다. 나는 작가보다 더 어렸고, 역시 싱글이었으며, 이력 상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3년간의 경력이 있었던데다가 때마침 계약만료를 앞둔 시점이었다. 결국 나는 그 책에 힘입어 1년간은 백수 생활을 할 것임을 선포하였고 평소 배우고 싶었던 드라마작가 과정을 공부하며 마지막에는 모아둔 돈을 탈탈 털어 40일간의 서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 배낭여행지에서 나에게 꽤 많은 영향을 주었던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1년 뒤 다시 호주로 날아가게 되었다. 워킹홀리데이라는 흔한 제도권 안에서 나는 작가가 느꼈던 해외 장기체류가 주는 고독과 외로움을 절감하기도 하였으며 결코 흔하지 않을 경험들을 차곡히 기록하였다. 그 시간들은 나조차도 이해되지 못한 나의 어느 일부분이 뒤늦게라도 되찾은 시간과도 같았다. 홍인혜작가처럼 호주에서의 나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그 당시 나라는 사람과 가장 친해졌던 시기를 가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책은 여행자와 생활자에 관하여 누구보다 골몰한 흔적이 돋보이는 기록물이다. 여행자를 위한 정보들은 배제되어 있지만, 그 안에 ‘여행하는 사람, 일상을 사는 사람’에 관한 고찰이 담겼다. 이렇듯 책은 때때로 누군가에게 활자가 알알이 가슴에 박혀 기어코 일어서게 만드는 동기를 안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글을 쓰는 이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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