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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22. 2021

어느 덧 서른을 맞이한 나에게

2021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응모작

안녕.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참으로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네.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살면서 처음인 것 같아. 이런 특별한 동기가 있지 않고서야 섣불리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이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튼 서른을 맞이한 것을 축하해.


너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막상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 없기도 하네. 평소 너는 글을 쓰면서 너의 생각을 곧잘 잘 정리해왔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너 스스로를 들여다볼 시간이 의외로 적어서일까. 홀로 글을 써오며 너와 나는 꽤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착각이 아닐까 싶어. 다른 이들에게는 용기와 조언을 주는 말들을 꽤 많이 했으면서, 정작 나에게는 그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해.


숨 가쁘게 살아온 20대가 지나고, 어느덧 서른 살을 맞이했네. 서른이 오는 것을 꽤 무서워했으면서도 막상 서른 살이 되고 보니 별것 아니란 생각이 들지? 어린 나이에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일찍 철이 들었고, 사회생활 시작도 남들에 비해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으니 네가 서른 살이 오는 것을 그토록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도 이해가 되긴 해. 너는 어릴 적부터 줄곧 빨리 철이 들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으니 어쩌면 20살부터 서른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겠어. 물론 그 과정들이 있어 지금의 네가 있는 것이겠지만,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너의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그때의 나에게 조금 관대해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달까.


사람을 참 좋아하고, 그만큼 사람에게도 참 상처받으면서 20대를 보내왔지. 너는 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너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늘 어려워하지 않았고, 때때로 그것 때문에 꽤 많은 상처를 받아왔어. 집안에서 부모님이 의지하는 첫째로 자라면서 너는 어쩌면 연애를 통해서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몰라. 의젓한 첫째의 역할이 여자친구라는 이름으론 지워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너는 때때로 사랑에 목을 매기도 하고, 그 사랑에 배신 받고 상처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온 것 같아. 그러면서 지금처럼 감정에 대해 초연해지고, 이성에게 얻는 사랑보다 나 자신을 스스로 챙기는 방법에 대해 더욱 골몰하는 사람이 되었지. 너의 그 힘들었던 사랑들도, 결국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거야.


항상 외국을 동경해왔던 너는, 용기를 내어 호주에서 1년을 지내며 온갖 일을 참 많이도 겪었지. 성격이 드세지 않다는 이유로 대놓고 멸시를 받기도 하며, 심지어 취업사기에 가까운 것까지 당해보면서 말이야. 그렇지만 반대로 너는 한국에서 결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그 시기에 배웠어. 네가 정답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들이 다른 곳에서는 그저 다른 문화에서 비롯된 사소한 것임을 깨닫게 된 거야. 그리고 너는 그때 만들어진 너의 가치관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 때때로 그런 이유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토록 방황하며 다사다난하게 보낸 20대를 뒤로하고 이제 새로운 30대를 맞이한 경재야. 너는 앞으로도 너의 지난 과거에서 받은 상처들을 디딤돌 삼아 더욱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사람을 꽤 많이 좋아했던 너는 전에 비하여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아. 인생에서 너를 중심으로 세워두려 하고, 너의 그 인생에서 1인분의 삶을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지금의 네가 좋아. 아등바등 살았던 20대에 비하여 조금은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생긴 지금의 너는, 네가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더 많은 일을 충분히 잘 해내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 물론 지금도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현실 안에서 사소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최근 <환승연애>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출연자의 스무 살과 서른한 살을 보고 너는 꽤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 과연 나도 이 사람처럼 어릴 때 비하여 성숙해졌을까, 나는 지금은 어른일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스무 살에 비하여 너의 세계는 꽤 많이 확장되었고, 너는 그 세계의 일원으로 너를 전보다 조금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야. 비록 20대에 네가 갖고 있던 그 순수함과 밝은 모습은 조금은 흐릿해졌다 할지여도, 그 자리에는 인생을 한 발 짝 떨어져 볼 수 있는 여유가 채워졌으니까. 네가 스스로 20대를 열심히 살았고, 또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부터 이미 너의 30대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야.


어쩌면 너는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에 비하여, 아직은 많이 어리고 미숙할지 몰라. 40대가 돼서 이 글을 다시 본다면 너는 어쩌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 10년 후에 다시 이 글을 본다고 할지여도, ‘나는 이때 너무나 어렸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살아보자. 마음속에서는 작가로서의 꿈을 품고 있는 순수했던 10대 소녀를 조금은 남겨두며 모든 것에 열정을 가졌던 20대의 패기 역시 쉽게 잃어버리지 말자. 너의 곁에는 그런데도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여겨주는 인연들이 아직 존재하고, 누군가에게 선택되는 것을 기다리는 삶보다 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여 살아내자. 앞으로의 너는 지금의 너처럼, 언제나 멋있고 또 빛이 날 거야. 그리고 혹여 빛이 나지 않더라도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모든 일은.



photo : https://m-grafolio.naver.com/creator/207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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