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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Jan 06. 2022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기택이 박사장을 죽인 이유

중앙대학교·대학원 2021 독후감 공모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을 수상하며 한국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상까지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전세계적으로 큰 신드롬을 일으켰다. 위 영화에 대한 각자의 감상은 꽤 다를 수 있으나, 공통적으로 세계인들이 위 영화에 열광한 이유는 ‘공감’이었다. 자본주의사회가 낳은 계급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서늘하고도 유쾌한 곤충우화. 누구하나 극단적인 악과 선을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촌극, 그리고 그 광경을 그리 유쾌하게 만은 볼 수 없는 우리들. 영화 <기생충>을 관람한 관객들이 느끼는 공감은 어떤 따스한 위로 같은 것이 아닌 위 같은 촌극이 비단 스크린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공포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박사장이 코를 막으며 죽은 근세의 몸 아래에서 차 키를 빼어든 순간 기택이 벌인 살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기택은 그저 근세에게 ‘동질감’을 느껴 살인까지 저지른 것일까. 그 장면에 대한 답이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집필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 있었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다정한’ 유전자가 어떻게 인간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에 대한 고찰과 평화로운 사회가 되기 위한 해법이 담겼다. 책은 총 9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무려 절반에 해당하는 5챕터까지는 동물의 사례를 들어 다정한 유전자가 종의 번식에 어떻게 기여하였는지를 서술한다. 주로 늑대에서 파생된 개가 어떻게 인간과 친화적인 동물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주로 인류와 비교되어 갖은 실험군으로 선택되었던 침팬지와 다르게 보노보는 어떠한 사회적기술을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이 절반에 해당하는 내용을 동물의 사례로 들어 다정한 유전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뒤이어 나올 인간의 자가가축화와 그에 따른 잔혹성에 대한 주장을 펼치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인간 역시 위와 같은 자가가축화된 포유류의 한 종으로 보고 있는데, 그 가설에 힘입어 인류가 저지른 잔혹행위에 내제된 인간 본성의 어두움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타인에게 잔혹해질 수 있는 이유를 타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로 꼽으며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접촉과 교류로 뽑았다. 인간이 스스로 집단을 만들며, 그 집단 내에서 다정한 유전자가 발현될수록 외부집단의 위협에는 그 다정한 유전자를 차단할 수 있는 회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주로 백인우월주의와 흑인에 인종차별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가를 설명하였다. 어쩌면 그 지점이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가 왜 미국인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바일지도 모른다. 


앞서 영화 <기생충>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그러니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극 중 주인공들에게 빗대어 보자면 이렇다. 박사장의 집안에서 각자가 가족임을 숨긴 채 운전기사, 과외선생, 입주가정부를 맡고 있던 기택의 가족과 전 입주가정부(문광)의 남편으로서, 몰래 지하실에서 숨어살던 근세. 기택은 철저히 자신은 근세와는 다르며 굳이 분류하자면 자신을 박사장과 같은 부류의 사람임을 희망하며 이렇게 표현하였다. 박사장과의 아침 출근 길은 두 남자의 ‘동행’이라고. 기택은 계획도 없이 산다며 기생충처럼 지하실에 기거하는 근세를 비인간화하며, 박사장을 자신과 같은 집단 내 일원이라 스스로 다독인다. 그렇게 자신의 신세를 애써 부정하던 기택이었지만 ‘같은 집단’내 박사장이 실은 자신 스스로 동질감과 묘한 연민을 느끼고 있던 근세의 시신을 보고도 일말의 동정이 보이지 않자, 그는 돌연 깨닫는다. 실은 그의 집단은 냄새나는 시신으로 전략해버린 근세였음을. 그리고 그러한 근세의 시신 밑에서 차 키를 꺼내고자 코를 막는 박사장의 비인간적 행동(그러나 박사장에 입장에선 충분히 자연스러운)에 분노한다. 그렇게 기택은 위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설명된 ‘보복성 비인간화’에 입각하여 박사장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연민과 동질감으로 인해 우발적 살인까지 가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심리적 매커니즘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잔혹한 속성을 받아들이며,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살아야하는 것일까. 영화 <기생충>같은 것들이 이따금 화제를 불러일으켜야만, 또는 전쟁과 시위 그리고 만연한 인종차별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들이 화두에 올라야지만 우리는 우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일까. 위 책의 두 저자는 우리가 현대인류와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한 것이 살아남는 적자생존이 아닌 서로 간의 협력과 유대가 있는 다정함에서 기인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니 타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와 잔혹성은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본능이 아닌, 우리를 스스로 지키기 위한 본능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이면이며 ‘외부’와 ‘내부’로 나누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가 교류하고 소통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시작점은 거대한 어떤 인류적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종과의 유대관계에서 오는 행복한 경험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우리 옆에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를 끌어안고, 아이들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등으로.


사실은 성선설보단 성악설을 믿는 나로서는, 두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널린 마음으로 수용하기기에는 아직 관용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인간화는 집단을 지키려는 본능보다는 나 ‘개인’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서 작용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내민 작은 손길로 누군가의 인생이 조금은 제법 괜찮아질 수 있음을 믿는다. 나 역시 타인에게 배척당해야 할 존재가 아닌, 함께 어우러져 연대하는 이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조그만 요새는 만들되, 그 요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이를 무조건적인 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비록 문 밖에 서 있는 그 이를 요새 안으로 들이기에 꽤 많은 질문을 던질지어도, 우리를 발전시킨 것은 냉정하고 강한 것이 아닌 따뜻하고 다정한 것임을 유념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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