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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ug 16. 2022

왕이 되려는 자, 무게를 견디라 했지만

2022 책바 문학상 에세이부분

지금은 모두가 들으면 치가 떨리는 그 이름 코로나를, 불과 2년 전까지 만해도 나는 꽤 사랑했다. 왕관을 뜻하는 스페인어 코로나에서 비롯된 라거맥주인 ‘'Corona Extra’가 바로 내 최애 맥주였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불현듯 떠난 호주에서, 이 맥주는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 중 하나였다. 어쩌면 처음 이 맥주를 만난 순간부터 나는 이 맥주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맥주를 처음 접한 것은 시드니의 어느 펍에서였다. 명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 중 누군가 이 맥주가 맛있다며 나에게 추천하였고 레몬이 끼워져 나오는 이것이 신기해서 나는 어디를 가던 이 맥주만 마셨던 것 같다. 알고 보니 코로나맥주는 어디에서나 병입구에 라임이나 맥주를 끼워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외국살이가 처음이었던 나는 당시 이것 마저도 이국이 주는 낭만으로 다가왔다. 원래 외국엔 모두 병에 이렇게 레몬을 끼워주는구나 하면서, 그렇게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 맥주를 찾았다.


힘든 주방일을 끝내고 온 몸에서 튀김냄새가 진동을 할 때, 집에 들어가기는 아쉬운데 누군가를 불러 약속을 새로 잡기에는 체력이 남지 않을 때마다 근처 펍에서 이 맥주를 마셨다. 피쉬 앤 칩스나 감자튀김 같은 것들을 시켜서 가끔 친한 친구를 불러 고된 외국살이에 대해 논할 때에도 언제나 코로나맥주가 곁에 있었다. 이후에 맥주를 꽤 좋아하게 되어 오로지 주종은 맥주로 통일했음에도 코로나맥주를 향한 나의 사랑은 미처 끝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맥주의 향이 쎄진 않으면서도 레몬이 주는 그 상큼함이 좋았다. 생각해보니 맥주를 좋아하기 전에 처음 좋아하게 된 맥주가 바로 이 코로나맥주였기에 맥주애호가가 된 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소주의 알코올향이 싫어서 맥주를 마셨다면, 코로나맥주를 즐긴 이후로는 맥주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코로나맥주를 한국에서 다시 만난 것은, 귀국한 지 꽤 지나서였다. 한국에 막 귀국하였을 때에는 시드니에 애증이 생겨서 관련된 것들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시간이 흘러 그리움이 몰려오면서 이 맥주를 다시 찾았다. 여전히 코로나맥주는 병 입구에 레몬이 끼워진 채로 나왔고 그게 비록 이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음용법은 아닐지어도 꽤 반가웠다.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드니로 다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였을 땐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그 맥주와 이름이 같은 것이 속상하였다. 알고 보니 왕관 같은 모양이 비슷해서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왜 하필 그 이름을 붙혀야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로 코로나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되면서 괜스레 남들 앞에서 코로나맥주를 선뜻 주문하기가 꺼려졌었다. 맥주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홀로 눈치가 보인 것이다.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만큼 위협적이지도 않고, 좋아하는 맥주정도는 마음 편하게 시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 어딜가든 여전히 코로나맥주를 찾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뭐 하러 그리 살았나 싶고, 왜 죄 없는 맥주에 눈총을 주었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왕관을 닮은 맥주를 좋아하는이라면 좀 더 담대해 져야했다. 왕이 되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 했지만, 나는 왕이 되기를 꿈꿔본 적은 없고 그저 마음 편한 광대로 살고 싶다. 왕관은 왕만 쓰는 것이 아니니, 선택할 수 있다면 광대의 왕관을 쓰겠다. 시드니에서 자유롭게 살며 코로나맥주로 하루를 달래던 그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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