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고 난 후 감상
*영화에 대한 스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를 뒤늦게 보고 뒷북으로 남기는 감상입니다.
어느 순간 삶의 모든 선택들을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학과를 지원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때 그 일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교수의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회사를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쩜 이렇게 후회 가득한 선택지만 골라 달려왔는지. 멍하니 서서 뒤를 돌아보며 절망하는 날들이 있다.
그런 선택의 선택들의 갈림길에서 나는 너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했고 너와, 나의 기쁨을 세상에 내보냈다. 행복했다. 행복하다. 행복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왜 이토록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불행하기도 할까. 분명 내 몸은 이곳에, 네 눈앞에 서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갈림길에 서서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하며 정신을 뺏기는 걸까. 좀 더 근사한 내가 있을 어딘가의 우주 속 나를 상상하는 에블린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아 묘한 동질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초라한 스스로의 선택과 현재에 괴로워 몸부림치고, 유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실체를 타인에게 들킬 것이 두렵다. 혼란함 가득한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내가 뭘 하는지, 어디 서있는지 알 수 없는 혼란함을 느낄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울. 악착같은 에블린보다도 더 약한 멘탈을 지닌 나는 어쩜 조이를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어찌어찌 하루의 시간을 돌리고 산산이 깨진 그릇을 들고 발을 동동거리며 하루를 달려 나는 네 곁에 도착한다. 그리고 네 곁에서 울고, 웃었다. 영화 속의 섬세하고 여린 듯 강한 에드워드와는 사뭇 다른 나의 에드워드. 너는 무감하고 무탈하고 단단하다. 영화 속의 에드워드와는 정반대에 가까운 너. 실제로 만우절 장난으로 눈알을 달았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지.
그래도 나는 너와 영화 속 에드워드의 공통점을 알고 있어. 너희는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정하게 우리의 곁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어. 나는 영화 속 에드워드를 보며 너를 떠올렸어. 나와는 정말 다른 너는 내가 우울과 허무의 늪에 빠져들지 않게 도와주지. 비록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에블린과 나의 차이는 난 에블린처럼 아직도 에드워드가 하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거야. 그래서 아직도 그 베이글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도중일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너의 무심한, 무감한 다정에 기대어. 예전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너를 원망했지만, 이제는 네가 나에게 공감하지 못한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 여기지. 베이글에 혹하는 사람은 아직 한 명으로 충분해. 친애하는 나의 에드워드. 나는 아직도 다른 차원을 헤매며 후회하고 방황을 멈추지 않아. 그래서 네 곁으로 돌아와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해.
이 영화를 보고 네 생각을 많이 했어. 나의 무수한 후회로 도달한 삶에서 내 곁을 함께 걸어가고 있는 너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어. 나의 친애하는 에드워드. 너는 앞으로도 변하지 말아 줘. 나도 좀 더 너와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다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 안 그러면 이 우주에 아주 큰일이 생길지도 모르거든.
아주 길고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지만. 한마디로 네가 참 고맙고 소중하다로 요약할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