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읽고 싶은 책|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문제는 현실의 세계에서 리더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은 흔히 권력 자체를 좇는 특성이 있고, 권력은 그들을 부패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권력추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민주적 정부의 무능력을 조롱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얻어 바로 그 정부의 수장으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뽑은’ 리더라는 정치적 역설을 마음껏 활용하여 정당성마저 누립니다. 그러고는 우리의 마음을 산산이 부숴놓고 스스로도 파괴됩니다.
불안한 희망이 유통되는 이 시대에 사회문제의 해결을 본령으로 삼는다는 학문이 절망을 성찰하는 것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테마파크를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절망에 대한 성찰이 희망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답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답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절망도 희망도, 선함도 악함도, 빛도 어둠도 모두 공존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든, 우리 마음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것들이든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역설적 존재입니다. 그 역설은 우리에게 한계를 드리우지만,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 깊이 뿌리내린 문제들을 한걸음에 풀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을 조심하고, 풀 수 있으리라는 지나친 열정을 삼가고,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다음 한 걸음을 선택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3월의 마지막 날을 앞둔 주말 눈이 내렸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달력은 3월로 넘어갔어도 여전히 12월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3일 받았던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 채로 새해를 맞았고 어느덧 한 분기가 훌쩍 지났다. 이제 4월, 여전히 봄은 멀게만 느껴지고 매일 들리는 소식은 좋기보다는 절망적이었다. 이 책을 읽은 게 1월인데도 여전히 현 상황에 유효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의 실제 집필과 출판은 2022년부터 2023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책을 읽다 보면 어쩌면 이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이렇게 말하기는 쉽겠지만.
사실 이 책은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절망하는 이들을 위해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책일 수도 있고, 둘째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외되기 일쑤인 ‘작은 자’가 절망하게 되는 현 상황을 위해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책일 수도 있다. 이 둘이 완전히 다른 이들은 아닐 테지만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절망과 역설이 가득하다. 이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돌아본다면, 민주주의가 지닌 역설을 무시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갈등을 긍정하고 합의를 추구하다 보니 문제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과정에서 자꾸만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독재적 리더에게 매혹된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극우 리더가 선전하게 되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그걸 위해 노력하다 보니 문제 해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그런 노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이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 피로감이 짙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설 속에서 저자는 현 사회가 ‘작은 자’를 대표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보고, 국가가 잘못된 정책을 펴는 이유와 정책을 잘못 수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렇다면 시민은 항상 옳을까? 반드시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시민인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역설을 딛고 희망을 품으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하는지, 공적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이 절망적인 민주주의에서 어떠한 희망을 품는 것이 좋을지 간과하기 쉬운 마음의 차원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이 알맞을 때 내게로 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다정하다. 의도적으로 구어체를 사용해 동료 시민에게 말을 건네듯 집필한 노력이 돋보인다.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언어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작성하려는 의도가 충분히 느껴졌다. 저자는 ‘작은 자’라는 새로운 명칭을 고안하며 ‘사회적 약자’라고 이름 부를 때보다 그들을 강인한 존재로 바라보기로 결정한다.
이런 사회과학책에서는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광장에서 대화를 나누듯 작성되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이성만으로 대화하지 않는다. 공적 담론에 감정이 배제된 채로 대화를 나누는 건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자체가 책을 매개로 한 동료 시민과의 대화라고 느껴진 것은 이상하지 않다.
마침내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연함’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투쟁해야만 했다. 수없이 많은 절망의 순간이 있었으나 우리는 그 사이에서 분명 희망을 보았다. 국회로 한달음에 뛰어가 자신의 몸으로 군대를 막은 사람들,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에 온몸이 얼어가는데도 자리를 버티며 대치한 사람들, 생업이 있는데도 가장 높은 곳에서 깃발을 흔들기 위해 광장에 나온 사람들, 닿지 못할 이들이 이야기를 광장에서 전한 사람들, 자신이 지닌 가장 소중한 응원봉으로 광장을 밝게 빛낸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희망이었다. 나는 그 희망에 많이도 빚을 졌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언제고 절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희망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면 희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않으리라 바라본다.